머쓱해진 美…北 빠진 EAS 및 아세안+3 성명엔 CVID 포함
ARF성명에 'CVID' 대신 '완전한 비핵화'…北 외교전 승리?
6일 발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8월 4일·싱가포르) 외교장관회의 의장성명에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라는 표현 대신 '완전한 비핵화'(CD·Complete Denuclearization)가 들어감에 따라 그 배경이 주목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처음 주창한 CVID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에 명시된 표현이며, ARF 의장성명에도 '단골 메뉴'였다.

필리핀에서 열린 작년 ARF 의장성명에는 "몇몇 장관들은 한반도의 CVID를 평화적으로 달성하는데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며…"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그러나 올해 의장성명에는 "장관들이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공약과, 추가적인 핵·미사일 시험을 하지 않는다는 맹세를 이행할 것을 북한에 촉구했다"는 문안이 들어갔고, CVID는 없었다.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던 CVID 대신 북한이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북미정상회담 합의에 담은 '완전한 비핵화'가 ARF 의장성명에도 반영된 것이다.

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ARF 외교장관 회의에서 27개 회원국 중 다수가 CVID를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주최국이 정리해 발표하는 것이 의장성명인 만큼 CVID가 어떤 형태로든 의장성명에 명시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실제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5일 싱가포르에서 ARF 결산 기자회견을 하면서 "우리는 남북·북미정상회담 표현을 그대로 따서 'CD(완전한 비핵화)'가 우리 입장이라고 말했지만, 문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대다수 나라가 CVID를 말해 그렇게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 장관의 해당 기자회견후 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발표된 ARF 의장성명에는 CVID 대신 CD가 들어갔다.

ARF가 열린 4일 같은 장소에서 개최된 아세안+3(한중일) 외교장관회의와,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 등 북한이 참가하지 않은 회의에서 채택된 의장성명에서 CVID가 포함됐다.

이를 두고 볼 때 리 외무상을 포함한 북한 대표단이 ARF 의장성명에 CVID를 명시하지 않으려고 총력전을 펼쳤으며, 결국 목적 달성을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올해 ARF 의장국인 싱가포르가 북미정상회담 주최국으로서 대립·갈등보다는 대화 국면을 유도하기 위해 작년과는 달리 공동성명에의 CVID 불포함에 기운 것 아니냐는 추정도 있다.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인 우리 정부도 CVID 대신 CD를 공식 입장으로 거론한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CVID에 대해 '패전국에나 적용하는 방식'이라며 강하게 배격해왔다.

북미정상회담에서도 CVID를 명기하려는 미국의 집요한 요구를 북한이 끝까지 거부하자 미국은 '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라는 신조어를 만들기까지했다.

결과적으로 CVID가 ARF 의장성명에서 빠진데 데 대해 북한 나름대로는 외교적 승리로 자평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CVID나 FFVD 명기를 관철하지 못한 미국으로서는 머쓱하게 된 상황이다.

정부 당국자는 6일 "올해 아세안 연쇄 회의 의장국인 싱가포르가 북한이 참가하는 ARF에서는 북한의 입장을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한편, 우리 정부는 이번 의장성명에 대해 우리 입장이 십분 반영된 결과라며 반색하고 있다.

2차례 열린 남북정상회담과 4·27 남북정상회담 결과물인 판문점 선언에 대한 환영 입장과 판문점 선언의 '완전하고 신속한 이행'이 의장성명에 들어가기까지 우리 정부의 외교적 노력과 그에 대한 회원국들의 전반적인 동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한국 정부 입장이 100% 반영된 의장성명으로 보면 된다"면서 CVID 대신 CD가 들어간데 대해서는 "CD가 개념적으로 CVID의 요소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