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댓글은 인신공격과 욕설, 비하와 혐오의 난장판" (추미애 대표)
"착한 김경수 의원이 악마 드루킹에게 당했다" (추미애 대표)
"특검 아니라 그보다 더한 조사에도 당당히 임하겠다" (김경수 지사)
"김 지사가 기억이 안 난다면 기억이 나게 도와줄 수 있다" (허익범 특검 관계자)
김경수 경남지사 (사진=연합뉴스)
김경수 경남지사 (사진=연합뉴스)
잇단 설화를 낳고 있는 '드루킹 댓글조작' 관련 수사가 종반을 향해 치닫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벌어지는 뉴스 댓글 여론 조작 의혹을 올 1월 17일 처음 제기했다. 당시 추미애 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네이버 댓글은 인신공격과 욕설, 비하와 혐오의 난장판"이라며 "이를 묵인하고 방조하는 포털사이트도 공범"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당은 1월 말 네이버 댓글 조작 의혹 정황을 수집해 경찰에 고발했다.

당시 '평창 겨울올림픽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기사의 비판 댓글에 '공감'과 '비공감' 수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올라가는 모습이 담긴 유튜브 동영상이 공개됐고 이후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2월 7일 수사에 착수했다.

댓글 여론 조작 정황을 포착한 경찰은 온라인 닉네임 '드루킹'을 쓰는 김동원(49.구속) 씨가 운영하는 경기 파주시의 느릅나무 출판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김 씨 등 3명을 긴급체포했다. 이어 같은 달 25일 이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한 뒤 30일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드루킹 일당은 댓글 추천을 불법적으로 반복하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댓글 순위를 조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충격적인 사실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로 시작된 수사가 겨눈 칼날에 맞은 범인들이 민주당원이었다는 점이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문제제기했던 악성댓글 조직 운영자 '드루킹' 일당이 수면 위에 드러나면서 정국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렸다.

대형 포털 네이버 대표는 이같은 댓글조작이 가능했던 댓글 시스템에 대해 사과하며 대책마련에 분주했다.
 '드루킹' 김동원씨 (사진=연합뉴스)
'드루킹' 김동원씨 (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민주당원이 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단일팀 구성에 '딴지'를 건 것일까.

조사 과정에서 드루킹과 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던 김경수 경남도지사와의 연루 사실이 점점 드러났다.

드루킹이 김 지사에게 오사카 총영사 인사청탁을 했다가 무산되자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겠다'며 정부 비판 악플로 자신의 실력행사를 했던 것.
4월 15일 KBS1 ‘뉴스광장’
4월 15일 KBS1 ‘뉴스광장’
이 즈음 드루킹이 경공모 카페 회원들과의 나눈 단체 채팅방 글의 일부가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드루킹은 이 채팅방에서 김경수 지사를 언급하며 "우리가 1년 4개월간 문재인 정부를 도우면서 김경수 의원하고 관계를 맺은 건 다 알고 계실 것"이라며 "대선 승리하기 전에 두어 번 부탁을 한 게 우리 회원분들을 일본대사로 (보내 달라고 요구한 것)"이라고 적었다.

이어 "김경수는 분명히 외교경력이 풍부한 사람이 해야 돼서 못 준다 말했다"며 "지금까지 모든 거짓말을 내가 다 참아왔지만, 외교 경력 없는 친문 기자 나부랭이가 오사카 총영사로 발령받으면 그때는 도망갈 데가 없겠죠"라고 덧붙였다.

드루킹은 "분명히 말해 놨다. 거짓말 확인하고 행동에 들어가겠다고"라며 “(김 의원이) 거짓말을 했다면 그걸 확인하는 순간 날려줘야죠"라고도 경고했다.

이후 드루킹은 김 지사 관련 기사에 오사카 영사 추천이 불발된 데 대한 불만을 담고 있는 '김경수 오사카'라는 댓글을 여러차례 달면서 조직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드루킹이 김경수 지사 기사에 단 댓글
드루킹이 김경수 지사 기사에 단 댓글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 중의 측근이라 할 수 있는 김 지사의 연루만으로 정국은 들끓었다.

추 대표는 드루킹 특검이 애시당초 "특검 ‘깜’도 안 되는 사건"이라며 야당의 정치공세에 반박했지만 문제를 더 크게 만든 것은 경찰의 초기 안일한 수사와 의혹축소 움직임이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은 4월 16일 기자간담회에서 김 지사의 사건 연루 여부에 관한 질문에 "김 씨가 김 지사에게 대부분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보냈고 김 지사는 거의 읽지조차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김 지사가 김씨에게 매우 드물게 '고맙다'는 의례적 인사 메시지를 보낸 적은 있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발표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착한 김경수 의원이 악마 드루킹에게 당했다", "드루킹 개인의 일탈일 뿐이다. 김경수 의원은 협박당한 피해자다"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여론이 거세던 2016년 11월∼2017년 1월 세 차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틀 전인 2017년 3월 8일 한 차례, 이후 대선 정국이던 2017년 3∼5월 네 차례 김 지사가 김 씨에게 기사 URL을 보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6월 11일과 10월 2일에도 각각 한 차례씩 김씨에게 기사 URL을 보내기도 했다.

김 지사가 김씨에게 기사 링크와 함께 "홍보해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내면 김씨는 "처리하겠습니다"라는 답변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보안 메신저 텔레그램 외에 보안성이 강화된 미국 메신저 '시그널'로도 대화했다고 경찰이 밝혔다.

경찰이 경솔하게 "김경수 지사는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고 발표하면서 스스로 경찰 수사에 대한 신뢰를 흔들어 버렸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경찰은 기자회견 후 댓글 조작사건에 관한 논란이 뜨거워지자 뒤늦은 계좌추적이나 압수수색에 나서 논란을 자초했다.

김 지사는 4월 기자회견서 "(드루킹은) 대선 경선 전에 처음 찾아와서 만났고, 그 이전에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다", "저하고 마치 수시로 연락 주고받은 것처럼 말하는건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라고 관련성을 부인한 바 있다. 하지만 이들이 기존에 알려진 텔레그램뿐 아니라 '시그널'을 이용해 50차례 넘게 대화를 나눈 것으로 확인되면서 신빙성이 약화됐다.

김 지사가 주장했던 관계보다는 둘 사이가 좀 더 밀접한 관계였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드루킹 일당의 댓글조작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허익범 특별검사팀이 발족됐고 수사개시 40일 만에 피의자로 전환된 김 지사를 포토라인에 세웠지만 정황상 의심이 아닌 정확한 증거로 김 지사의 혐의 소명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다.

김 지사는 18시간여에 걸친 밤샘 조사를 마치고 7일 새벽 귀가하면서 "수사에 당당히 임했다. 충분히 소명했다"고 밝혔다.

김 지사는 "특검이 혐의를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를 제시했느냐"는 질문에 "유력한 증거나 그런 게 확인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날 조사의 가장 큰 쟁점은 김 지사가 매크로 프로그램 '킹크랩'의 존재를 인지했는지 여부, 명시 또는 묵시적으로 댓글조작 활동을 지시했는지 여부 등이다.

김 지사는 경찰 조사때 김씨와 몇 차례 만남, 통화내용 등 사실관계에 대해선 부분적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 지지단체와의 통상적 접촉으로 '선플(선한 댓글달기) 운동'으로 알았을 뿐, 조직적 댓글조작인 줄 몰랐다는 입장이다.
생각 잠긴 허익범 특검 (사진=연합뉴스)
생각 잠긴 허익범 특검 (사진=연합뉴스)
반면 특검팀은 통화내역, 비밀메신저 대화내용, 경공모 회원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김 지사와 드루킹 일당이 공모했다고 심증을 굳혔다. 피의자로 입건한 것은 공범 관계 증명에 자신감으로 풀이된다.

이 과정에는 드루킹이 자진 제출한 USB가 큰 역할을 했다. 폐쇄회로(CC)TV 등 객관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드루킹이 '보험'으로 은닉해온 USB 자료의 파괴력에 따라 수사 향방이 갈릴 수 있다.

김 지사와 드루킹이 보안성이 강화딘 시그널 등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은 추후 두 사람간의 대화를 누구도 알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김 지사를 조력한 보상을 받으려는 의도가 있었던 드루킹은 치밀하게 대화를 모두 캡쳐해서 자신의 USB에 저장해뒀다.

특검팀은 지난 달 25일 드루킹의 변호인을 통해 그간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다른 회원에게 은닉을 부탁했던 128GB(기가바이트) 용량의 USB를 비밀번호를 확보했다.

약 60기가에 달하는 USB에는 시그널을 통해 드루킹과 김 지사가 주고받은 그간 메시지는 물론 정치인들과의 접촉 내역이 상세히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문서만으로 60기가에 달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용량으로 기록광으로 알려졌던 드루킹의 행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USB는 댓글조작 의혹을 규명하는 데 큰 단서가 될 수 있지만 김 지사의 '댓글조작 지시' 여부를 구체적으로 뒷받침할 추가 핵심 증거가 될지는 아직 의문이다. 핵심 증거가 없다면 통상적 '선플달기 운동' '홍보 요청'이라는 기존 논리를 깨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경공모 사무실에서 2016년 11월 열린 것으로 보고 있는 킹크랩 시연회 사실 관계도 당사자 진술 외에 이를 증명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공방 수준에서 그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인사청탁 의혹도 통상의 인재풀 추천·심사 과정이라는 김 지사와 여권 측 해명이 더욱 힘을 받게 된다. 드루킹 측 요구가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혐의로 엮기가 더욱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드루킹 일당의 유심 카드와 컴퓨터를 확보하며 초반 수사는 활기를 띠었지만 수사 27일 만에 갑자기 들려온 고 노회찬 의원의 비보.

특검이 핵심을 비켜간 채 곁가지에만 매달렸다는 비판과 함께, 허익범 특검은 유가족에게 고개를 숙였다.

특검이 앞으로 19일간 동안 핵심 당사자인 김 지사의 연루 의혹을 입증할 수 있을지에 정치권은 물론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