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혼돈의 조계종, 권력을 해체하라
지난 7일 조계종 총무원이 보기 드문 사진을 공개했다. 숨겨 놓은 부인과 딸이 있다는 의혹을 받아온 설정 총무원장이 이날 오전 유전자 검사를 위해 구강 점막세포를 채취하는 사진이었다. 만으로 일흔여섯. 조계종의 원로이자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을 지낸 분에게 친자 확인을 위한 유전자 검사라니…. 지난해 4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덕숭산 정상 아래 정혜사에서 만났을 때의 꼿꼿함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비극은 이판(수행자)의 표상이던 총림의 방장이 사판의 정점인 총무원장으로 갈아탈 때부터 예고됐다. 총무원장 출마 사실이 알려지자 서울대 학력 위조 의혹, 숨겨둔 부인과 딸이 있다는 은처자 의혹, 거액의 부동산 보유 의혹 등이 줄줄이 제기됐다. 학력 위조 의혹은 스스로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나머지 의혹들은 원장 취임 후에도 풀리지 않았다. 설정 총무원장의 중도 퇴진은 은처자 의혹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지난 1일 설정 총무원장이 용퇴 의사를 밝힌 데 이어 8일에는 종단 최고 지도자인 진제 종정이 교시를 내려 설정 스님의 퇴진을 재확인했다.

제도권 내 수습 vs 판 바꾸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사태의 수습 방향을 놓고 조계종은 이미 혼돈 상태에 빠져 있다. 진제 종정은 이날 교시에서 세간의 헌법과 법률에 해당하는 종헌·종법에 따라 질서 있게 후임 총무원장을 선출하라고 교시했다. 교구본사주지협의회도 종헌·종법에 따른 위기 수습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 체제 안에서의 사태 수습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팽배하다. 종단 내 기존 세력이 또다시 총무원장과 요직을 차지하고 기존의 폐단을 답습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조계종 총무원장은 국회 격인 중앙종회 의원 81명과 각 교구에서 선출된 240명의 선거인단이 간접선거로 뽑는다. 중앙종회 의원도 일부 직능 대표를 빼면 교구별로 선출한다. 총무원 집행부와 중앙종회, 각 교구본사의 요직을 차지한 기존 세력이 다시 주도권을 쥘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난해 선거에서 세력이 약한 설정 스님이 당선된 것도 종회의 3분의 2 이상을 장악한 자승 전 총무원장이 밀어줬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존의 선거법을 뛰어넘는 비상 수단으로 판을 바꾸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선승들의 모임인 전국선원수좌회와 설정 총무원장의 퇴진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벌였던 설조 스님 등은 오는 23일 전국승려대회에서 종단 개혁안을 마련하자는 입장이다.

권력구조 해체가 근본적 해결책

조계종은 이미 여러 차례 대규모 내분 사태를 겪었다. 발단이자 요체가 총무원장이라는 자리, 권력이었다. 총무원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전국 3000여 개 사찰의 주지 임면권을 갖고 있고, 중앙종회에 종헌·종법 개정안과 종법안을 제출할 수 있다. 종단과 사찰의 재산 감독, 처분 승인권, 주요 사찰의 예산 승인 및 조정권도 행사한다. 교구본사주지회의 의장, 조계종유지재단 이사장, 승가학원 이사장,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장 등 당연직도 많다. 중앙집권형 대통령과 비슷하다. 4년마다 치르는 선거 때만 되면 금품 살포, 뒷거래 의혹 등이 재연되는 이유다.

조계종에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런 권력구조의 해체다. 20년 넘게 조계종을 출입하며 봐 왔지만 부처와 조사들의 수많은 금언(金言)도 권력이라는 탐욕 앞에선 너무나 무력했다. 1인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지 않고서는, 정치판이 돼 버린 종회를 혁파하지 않고서는, 속세가 종교를 걱정해야 하는 아이러니를 막기 어렵다. 분뇨를 치우지 않고는 냄새를 막을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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