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8일 리콜(결함 시정) 대상인 BMW 차량에 ‘운행정지’ 명령을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차량 소유자들의 불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올 들어 BMW 차량에 불이 난 사고는 34건(미니 브랜드 화재 2건 포함) 발생했다.

지난 4일 전남 목포에서 안전진단을 받은 BMW 차량까지 불이 나면서 소비자 불신은 더 커지고 있다. 정부가 부랴부랴 운행정지 명령 가능성까지 내비쳤지만, 정작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늑장 대응’ 논란과 이낙연 국무총리의 ‘질타’를 의식한 국토교통부가 앞뒤 재지 않고 면피용 ‘생색내기’ 발언을 쏟아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법적근거 없다더니… 여론 떠밀린 'BMW 운행정지' 가능할까
떠밀리듯 운행정지 검토 나선 국토부

BMW가 지난달 26일 520d를 포함한 42개 차종 10만6317대를 대상으로 긴급 안전진단과 함께 리콜하겠다고 했지만, ‘불자동차’에 대한 공포는 되레 확산하고 있다. 왜 주행 중 화재사고가 잇따르는지, 정확한 사고 원인이 무엇인지 등 속 시원하게 밝혀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BMW코리아는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에 문제가 생겨 불이 났다고 설명했지만 정확한 원인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유독 한국에서만 화재가 많은 이유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다.

분노한 소비자들의 소송도 줄을 잇고 있다. 차량 소유주뿐만 아니라 소비자단체도 소송에 가세했다. 법무법인 바른이 결성한 ‘BMW 피해자 모임’ 소속 회원 20여 명은 9일 BMW의 결함 은폐 의혹을 수사해달라는 내용의 고소장까지 제출할 예정이다.

국토부가 지난 3일에야 BMW 차량의 운행 자제를 권고했지만 소비자 불안을 잠재우고 실질적인 안전을 담보하기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만 받았다. 정치권까지 나서서 청문회를 열어 책임을 묻겠다고 하면서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국토부가 운행 자제를 권고한 지 5일 만에 떠밀리듯 ‘운행정지 검토’ 카드를 꺼내든 배경이다.

해외에도 안전 문제로 운행정지한 사례 없어

국토부가 운행정지 명령을 검토하겠다는 차량은 리콜 대상 10만6317대 중 14일까지 사전 안전진단을 받지 않은 차량이다. 안전진단 후 화재 위험이 있는 것으로 분류된 차도 대상에 포함된다. 리콜 대상 차량 대부분이 안전진단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운행정지 명령 대상은 줄잡아 1만 대 안팎일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특정 차량 운행을 제한할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자동차관리법 25조엔 대기오염, 천재지변 등에 따른 운행 제한을 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지만 안전 요건에 따른 별도 규정은 없다. 국토부도 당초 특정 차량에 대한 운행을 제한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설명해왔다.

이랬던 국토부가 이날 입장을 다시 바꿨다. 자동차관리법 37조를 기반으로 운행정지 명령을 검토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37조엔 ‘안전 운행에 지장이 있다고 인정되는 차량에 대해 정비 및 운행정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조항이 담겨 있다. 하지만 37조에 운행정지 명령을 내리는 주체는 기초단체장인 시장·군수·구청장 등으로 돼 있다. 이는 튜닝이나 개조를 거친 특정 차량(개인)에 적용하는 규정일 뿐이라는 게 법조계 안팎의 해석이다.

한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는 “특정 차량 브랜드를 대상으로 운행정지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으로 보는 건 과도한 법적 해석”이라고 말했다.

국토부가 특정 차량에 운행정지 명령을 내리도록 수많은 기초단체장을 설득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에서도 안전 문제를 이유로 정부나 지방정부가 나서 운행정지 명령을 내린 사례가 없다는 것도 부담스러운 대목으로 꼽힌다.

장창민/서기열/고윤상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