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라는 속담이 떠올랐다.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 소지가 있는 38명의 국회의원 명단 공개 요청에 피감기관이 직접 밝혀야 한다는 국회 대변인의 발표를 보면서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달 이들 38명 의원이 피감기관의 부당지원으로 해외출장을 갔다고 발표했다.

국회는 8일 이들의 신상문제와 관련해 “피감기관들이 조사 결과를 국회에 통보하면 문희상 국회의장이 문제 있는 사안에 대해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회부해 조치할 예정”이라고 했다. 국회의원에 대한 조사 권한도 없는, 그것도 국회와 ‘을(乙)’ 관계에 있는 피감기관이 위반 사실을 밝히라며 ‘공’을 떠넘긴 것이다.

피감기관들이 1차 조사를 끝내더라도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외부에 밝힐 수 없다.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KOICA) 관계자는 “8월에 조사를 마치더라도 외부기관에 공개하지 않고 권익위를 통해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국회와 피감기관이 이렇게 ‘핑퐁게임’을 하면서 38명 의원 명단은 20대 국회가 끝날 때까지 비공개로 방치될 가능성이 커졌다. 국회는 관련 법규정을 들어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 이계성 국회 대변인은 이날 이들 국회의원에 대한 자체 조사 및 공개 가능성과 관련, “공공기관의 정보보호 관련 법을 위반할 여지가 있다”고 발을 뺐다. KOICA 등 피감기관이 해당 국회의원의 위반 행위를 적극적으로 조사할 것 같지도 않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와 외교부 산하 단체인 KOICA는 이미 “김영란법에 위반되지 않는 정당한 외교활동”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피감기관이 조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몸부터 사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통위도 전날(7일) ‘의원 외교활동 관련 입장문’을 통해 “의원 외교활동에 대한 정부 측 지원이 필수적”이라며 김영란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국회 관계자도 “외통위 소속 의원들은 (해외기관) 실태를 점검·파악할 의무가 있다”며 “김영란법 위반이냐 아니냐는 논란은 상황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국회가 이처럼 자정 노력을 포기하면서 ‘제식구 감싸기’란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38명의 의원 중 다수가 국회 외통위 소속인 데다 문 의장을 포함한 각 당의 중진의원이 대거 포함됐기 때문이란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현장에서] 의원 38명 '김영란법 위반' 조사, 피감기관에 떠넘긴 '슈퍼甲 국회'
이 와중에 국회는 9일 20대 현역 국회의원이 사용한 특수활동비 내역을 공개하라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기로 했다. “국회 특활비 폐지를 추진하겠다”는 문 의장의 취임 첫 일성과는 정면 배치된 조치다. 국민이 국회를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