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기업·도시의 흥망성쇠 결정하는 '스케일링의 법칙'
생명과 기업 그리고 도시의 흥망성쇠를 관통하는 법칙은 무엇일까. 이 같은 야심적인 과제를 누가 감히 도전할 수 있을까. 복잡계 과학의 대부로 통하는 이론물리학자 제프리 웨스트의 오랜 연구를 집대성한 책이 《스케일》이다.

이 책은 살아있는 모든 것의 성장과 재생, 노화와 죽음을 지배하는 패턴과 원리에 관한 ‘큰 그림’을 찾아내려는 책이다. 많은 분량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는 독자도 있겠지만 지적인 탐구심이 강한 사람이라면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지적 탐구물이다. 10개 장을 차근차근 읽어나가는 것이 좋지만 마음이 급한 사람은 10장 ‘기업의 과학을 향하여’부터 읽어도 된다. 기업 부침의 현상과 법칙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생명·기업·도시의 흥망성쇠 결정하는 '스케일링의 법칙'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흥망성쇠를 지배하는 큰 그림은 ‘스케일링 법칙’이다. 이 법칙은 ‘규모’와 ‘규모의 변화’라는 렌즈를 통해 살아있는 모든 것 사이에서 놀라운 유사성을 찾아낸다. 예를 들어 동물의 체중과 대사율(단위 시간당 대사량)은 지수가 4분의 3에 가까운 거듭제곱 법칙에 따라 증가한다. 다시 말하면 어떤 동물의 몸집이 다른 동물의 2배라면, 필요로 하는 에너지의 양은 선형적으로 2배만큼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75%만 증가한다. 25%만큼 에너지 절감이 일어난다. 일종의 ‘규모의 경제’를 보여주는 사례다. 놀랍게도 이 법칙은 포유류, 조류, 식물, 세포에 이르기까지 살아있는 모든 것에 그대로 적용되며, 심장 박동수, 진화 속도, 수명, 나무의 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생명체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든 창조물인 도시와 기업에도 이 같은 법칙이 적용된다. 다만 도시와 기업 모두 스케일링 법칙을 따르지만 도출되는 결론에서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도시는 수확체증의 법칙인 초선형 스케일링 법칙이 적용돼 계속 성장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기업은 생물에서 관찰되는 규모의 경제와 마찬가지로 저선형 스케일링 법칙이 적용된다. 기업은 생물의 성장과 마찬가지로 성장의 한계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다.

도시는 성장할수록 임금, 국내총생산(GDP), 범죄 건수, 오염 등은 1인당 기준으로 15%씩 증가한다. 도시가 클수록 혁신적인 ‘사회적 자본’이 더 많이 창조되기 때문에 기회가 많아진다. 더 많은 사람이 계속 도시로 몰려들고 도시는 몰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이에 비해 기업은 도시보다 생물에 더 가까우며 규모의 경제에 의해 지배당하고 만다. 생물의 ‘대사’에 해당하는 기업의 총수익과 유지관리 비용 사이에는 괴리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기업의 몸집이 커짐에 따라 대사율은 저선형으로 증가하지만 에너지 공급은 세포의 유지관리 수요를 따라갈 수 없게 된다. 결국 기업은 쇠락을 피할 수 없다. 성장한 기업은 일정 기간 대사와 유지 관리 비용 사이에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다가 급격한 환경 변화로 그 균형이 깨지면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스케일링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삼라만상은 독자의 시각을 크게 확장시켜 줄 것이다.

공병호 < 경영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