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 스님, 총무부장·기획실장 교체
조계종 사태 어디로…차기 구도 '오리무중'
대한불교조계종 사태가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형국으로 흘러가고 있다.

총무원장 설정 스님의 퇴진 기한으로 제시된 16일이 다가오고 있지만, 퇴진과 차기 총무원장 선출 등을 놓고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설정 스님은 9일 중앙승가대 총장 성문 스님을 총무부장으로, 호법부장 진우 스님을 기획실장으로 임명했다.

전날 집행부 부·실장들에게 일괄 사표 제출을 지시한 데 이어 곧바로 인사를 단행했다.

설정 스님이 퇴진을 앞두고 자신의 뜻에 따라 차기 구도를 그려놓으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치열한 차기 주도권 다툼
설정 스님의 퇴진이 기정사실로 된 상황에서 조계종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차기 종권의 향방이다.

종헌종법에 따르면 총무원장 궐위 시 60일 내 선거를 치러야 한다.

새 총무원장 선출 때까지 권한대행은 총무부장이 맡는다.

물러난 총무부장 지현 스님과 기획실장 일감 스님은 자승 전 총무원장 재임 시기에 같은 직책을 맡은 바 있어 자승 스님 측 인사로 분류된다.

이들은 MBC 'PD수첩'이 설정 스님 등에 대한 의혹을 방송하면서 조계종이 혼란스러웠던 지난 5월 28일 임명됐다.

이번 인사는 설정 스님이 자승 스님 측과 거리를 두면서 돌파구를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설정 스님은 지난 총무원장 선거에서 자승 스님의 지지를 받았지만, 현재는 각자의 길을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승 스님은 여전히 중앙종회와 교구본사 주지 스님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 기득권 세력은 차기 총무원장 선출과 종단 개혁 등의 문제를 기존 체제에서 처리하는 것이 유리하다.

총무원장 선거는 중앙종회 의원들과 각 교구에서 선출된 선거인단이 투표권을 가진다.

현 중앙종회의 임기는 오는 11월 초까지이며, 10월에 중앙종회의원 선거가 예정돼 있다.

결국 차기 총무원장 선거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치러지느냐가 중요하다.

설정 스님 퇴진을 요구하는 측은 오는 16일 임시중앙종회에서 총무원장 불신임 결의를 추진할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는 상황에서 설정 스님은 퇴진 전에 사실상 마지막 카드로 총무부장 등을 바꾼 셈이다.

다만 유임된 부장들이 이번 인사에 반발해 총무원장에게 일괄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혼란은 막판까지 지속하고 있다.

다가오는 승려대회도 변수다.

전국선원수좌회와 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들의 모임 등은 직선제 도입 등을 주장하며 오는 23일 전국승려대회를 열 계획이다.

이를 지지하는 조계종적폐청산시민연대 등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중앙종회 해산 등을 요구하고 있다.

◇ 표류하는 교권 자주 및 혁신위원회
조계종 내부에서 사태 수습과 종단 개혁을 위해 출범한 교권 자주 및 혁신위원회는 표류하고 있다.

밀운 스님은 위원장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와 함께 종정자문위원장 및 위원직에서도 물러날 뜻을 전했다.

이는 밀운 스님이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어 설정 총무원장 퇴진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 이후 결정됐다.

밀운 스님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종헌종법의 절차를 밟지 않고 의혹만으로 총무원장을 내쫓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애초 당시 기자회견에 설정 총무원장이 참석해 퇴진 관련 입장을 직접 밝히려 했으나 입원을 이유로 무산됐다.

밀운 스님은 설정 스님에게 명예롭게 퇴진하는 길을 열어주려는 의도로 기자회견을 준비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날 발언이 오해를 빚으면서 사임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권 자주 및 혁신위원회는 MBC 'PD수첩' 방송 이후 설치된 비상기구이다.

종단 자주권 수호위원회, 의혹 규명 및 해소 위원회, 제도 혁신위원회 등 3개 소위원회로 구성돼 이달 말까지 활동할 예정이다.

설정 스님에게 딸이 있다는 의혹은 유전자검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사실상 검증이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설정 스님이 이미 퇴진 의사를 밝힘으로써 위원회의 사퇴 권유 등도 무의미하게 됐다.

종단 개혁안 등을 다루던 제도 혁신위원회 소위원장을 맡아 위원회를 실질적으로 이끌던 도법 스님은 업무를 중단하고 실상사로 내려갔다.

설정 스님 퇴진과 차기 집행부 구성 등의 혼란기에 위원회의 구실이 유명무실해질 위기에 처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