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규제 개혁의 첫발을 떼자마자 핵심 지지층인 좌파진영이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의료기기 규제 혁신에 이어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銀産)분리 완화를 강조하는 등 규제 개혁 추진에 본격적으로 나서려는 데 대한 조직적 반발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참여연대가 9일 연달아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내는 등 저항이 거세지자 정부도 움츠러드는 듯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혁신성장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규제 개혁에 험로가 예상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 대통령 규제개혁 '첫발' 떼자마자… 지지층 조직적 반발 시작됐다
◆같은날 성명 낸 경실련·참여연대

경실련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문 대통령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킬 수 있는 은산분리 완화 정책을 당장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실련은 “은산분리 완화는 인터넷전문은행의 활성화와 핀테크산업 발전, 혁신성장과 관련이 없다”며 “인터넷전문은행이 재벌과 거대 자본의 사금고로 전락할 것”이라고 했다. 허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도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은산분리 완화는 거꾸로 가는 금융정책”이라며 다음달 총파업을 예고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 7일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에서 인터넷전문은행 규제 완화 필요성을 강조한 데 대한 반발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 행사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이 국민의 큰 호응과 금융권 전체에 전에 없던 긴장과 경쟁을 불러일으켰지만 (금융시장에) 정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은산분리라는 대원칙을 지키면서 인터넷전문은행이 운신할 폭을 넓혀줘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성명서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삼성 간의 간담회를 걸고넘어졌다. 참여연대는 “삼성이 6일 정부와 한 간담회에서 바이오 관련 세제 완화 등을 요구했다”며 “문재인 정부와 삼성 간 거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정황이 존재한다”는 주장까지 폈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지난달 문 대통령이 “의료기기 분야에 ‘선(先) 시장 진입-후(後) 평가’ 체계를 도입해 규제를 개혁하겠다”고 선언하자 “박근혜 정부의 의료민영화와 거의 동일한 정책”이라는 비판 성명을 내놨다.

◆규제개혁 좌초하나

문 대통령은 최근 소득주도성장 정책 못지않게 규제 혁신을 통한 혁신성장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만으로는 일자리 감소와 민간투자 위축 등 악화되는 경제를 되돌리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규제혁신토론회에서 “지금까지 시도된 적 없는 혁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데 이어 매달 한 차례 규제혁신 현장을 방문해 규제 완화를 속도있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좌파진영은 이런 일련의 움직임을 ‘개혁 후퇴’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부 한 관계자는 “과거 노무현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우클릭’ 정책을 추진하면서 개혁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보는 게 좌파세력의 기본적 시각”이라며 “문재인 정부에서도 같은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좌파진영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도 위축되는 분위기다. 정부는 당초 지난달 말 혁신성장을 위한 10~20개의 규제 개혁 리스트를 발표하기로 했다가 계획을 접었다. 리스트를 발표했다가 시민단체 등의 반발에 부딪혀 개혁이 좌초될 가능성을 우려해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저항을 무릅쓰고 규제 개혁을 관철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정부가 핵심 지지세력의 반발에 굴복한다면 규제 개혁은 요원하다”며 “특정 정파가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표한다는 각오로 중심을 잡고 개혁을 밀어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