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대통령과 기업인들의 만찬
8월 들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을 열흘 이상 비우는 모양이다. 백악관은 이 사실과 함께 내부의 ‘공사 목록’도 발표했다. 흥미로운 것은 대통령 휴가 때 백악관 수리를 하는 것인지, 수리를 빌미로 대통령이 휴가를 간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당선되면 휴가를 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공약’(?) 때문에 백악관은 대통령과 관련해 ‘휴가’라는 말을 기피한다고 한다. 지난해 8월에도 백악관은 보수공사를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골프클럽에 17일간 체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여름을 보내는 곳은 뉴저지주(州) 베드민스터의 ‘트럼프내셔널골프클럽’. 2016년 대통령선거 승리 파티를 열었던 곳이다. 취임 전, 장관후보들 면접도 여기서 봤다. 장녀 이방카의 결혼식까지 올렸으니 그에게는 남다른 곳이다.

엊그제 이곳 ‘여름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주최한 만찬이 의미 있는 뉴스가 됐다. 초청 인사는 보잉 페덱스 펩시코 등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었다. “3분기 미국 성장률이 연 5%대일 수 있다”는 트럼프의 인사말이 먼저 기사가 됐지만, “CEO들은 미국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람들”이라는 언급도 울림을 남겼다. “(미국) 제조업체들은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다”며 중국과의 통상전쟁을 우려한 기업인 말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을 보면 대화도 스스럼없이 오간 것 같다.

대통령과 기업인의 이런저런 회동이나 오찬 만찬이 편하게 이뤄지는 것은 미국 정치의 전통이다. 공화·민주당 어느 쪽이 집권하건 차이가 별로 없다. 버락 오바마 정부 때는 샌프란시스코 교외의 한 개인주택에서 실리콘밸리 ‘IT구루 CEO’ 12명과 대통령의 격의 없는 만찬 모습이 우리에게도 적잖은 화제가 됐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의 근엄한 청와대 만찬이 대비됐던 것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새해 첫 골프상대는 경제계를 이끄는 게이단렌(경제단체연합) 회장단이다. 집권 후 연례 행사다. 일본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은 ‘아베노믹스’가 기업인들과의 수평적 협조를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기업인과의 만남에서 국내외를 구별하지 않는 행보가 돋보인다.

우리도 대통령과 기업인들의 만남이나 만찬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청와대 본관에서의 딱딱한 ‘공식 행사’가 태반이다. ‘안가’ ‘독대’의 부정적 이미지가 이런 데서도 쉽게 불식되지 못한 점도 안타깝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과 만찬을 한 게 지난해 7월, 어느새 1년도 더 지났다. CEO들과 술도 한두 잔 권하는 편한 만찬을 종종 하면 어떨까. 경제 관료들이 죄다 매달리는 투자활성화 정책보다 적어도 분위기 조성에는 더 도움되지 않을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