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길, 돌길, 물길따라… '숲 속 트레킹' 더위를 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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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방태산 트레킹 해보니
방동약수 '철분 물맛' 보고 출발
힘들면 다 내려놓고 계곡에 첨벙
아쿠아슈즈보다 등산화가 편해
방동약수 '철분 물맛' 보고 출발
힘들면 다 내려놓고 계곡에 첨벙
아쿠아슈즈보다 등산화가 편해
지난 4일 새벽 4시. 오전 6시에 출발하기로 돼 있어 눈을 뜬 뒤 베란다에 나가보니 열풍(熱風)이 몸을 감쌌다. 온도계를 보니 31.3도. 하루 중 가장 시원하다는 여명 때였다. ‘그래 시원해지자.’
오전 6시에 그렇게 강원 인제군 기린면으로 떠났다. 폭염이 절정이던 때라 피서객이 새벽부터 몰리면서 서울~양양 고속도로는 홍천군까지 막혔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인제군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예정된 시간보다 두 시간 지체됐다.
보통 방태산(芳台山) 트레킹은 방동약수터에서 시작한다. 해발 약 400m의 산 중턱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터미널 등에서 택시를 타면 이곳까지 올 수 있다. 택시비는 3만원 정도. 방동약수는 탄산과 철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콜라나 사이다 맛을 생각하고 물을 들이켰다. 청량감보다는 철분을 들이키고 있는 듯 ‘쇠맛’이 느껴졌다. 물맛을 본 한 초등학생은 “이게 무슨 맛이야”라고 투덜거렸지만 얼굴은 웃고 있었다.
방태산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트레킹을 시작하려면 방동약수터에서 도로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차가 한 대 지나가면 오르던 사람들이 콘크리트 포장도로 밖으로 잠시 비켜줘야 할 정도의 너비 폭이다. 방태산 계곡 트레킹이 시작되는 곳은 해발 840m 지점이다. 성인 남성은 1시간, 여성은 1시30분 정도의 산행으로 440m 정도 올라가야 계곡 트레킹을 시작할 수 있다.
오르는 길은 북한산과 달리 정상까지 모두 콘크리트로 돼 있어 그렇게 힘들지 않다. 이날 산행의 유일한 오르막이었다. 산을 오를수록 슬슬 휴대폰 신호가 안 잡혀 먹통이 된다.
정상에는 간이매점과 주차장이 있다. 화장실도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옷을 갈아입는 사람도 꽤 된다. 위로 올라갈수록 기온이 내려간다. 낮 12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는데, 기온은 30도 초반이었다. 바람도 열풍이 아니라 시원함이 섞여 있었다. 올여름 에어컨이 없는 야외에서 처음으로 느낀 시원함이었다.
잠깐의 휴식 뒤 본격적인 계곡 트레킹을 시작했다.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2㎞ 정도는 비포장 흙길을 걸어야 한다. 계곡은 보이지 않고 나무가 가득하다. 도란도란 동행자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다.
계곡에 접어들면 대화를 할 여유가 없어지기 때문에 이 구간에서 하는 게 좋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며 내려가다 보면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다. 저 멀리서 물소리가 들려온다. 물소리가 커지면 마침내 계곡이 눈에 들어온다. 흙길은 그곳에서 종료된다.
계곡 초입엔 물이 많지 않았다. 자갈과 바위가 있고 그 사이로 얕은 물이 흐른다. 발을 담가본다. 상류여서 그런지 물이 제법 차다. 목욕탕의 냉탕이 18도 수준인데, 재보니 21도 안팎이었다. 올해 폭염으로 평안북도와 함경남도의 바닷물도 25도 수준이라고 한다.
이제 길이 사라진다. 중간중간 선행자들이 닦아놓은 좁은 길이 나오긴 하지만 연속성이 없다. 계곡물을 따라 낮은 곳으로 함께 흐르는 것이다. 방태산 계곡 트레킹의 묘미다. 계곡을 따라 계속 아래로 내려가다가 몸이 뜨거워지거나 지치면 계곡물에 몸을 담근다. 길은 없지만 계곡의 가장자리를 따라가면 비교적 편하게 갈 수 있다. 계곡 왼쪽으로 가다가 바위가 길을 막으면 계곡을 건너 오른쪽으로 넘어가야 한다. 신발이 젖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애초에 하지 않는 게 좋다. 처음부터 발을 물에 넣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 신발은 트레킹을 하는 동안 절반은 물속에 있다. 그래서 아쿠아슈즈나 샌들을 신고 오는 사람도 있지만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길이 없고 자갈과 뾰족한 바위를 계속 밟아야 하니 등산화나 트레킹화가 훨씬 낫다. 옷은 흠뻑 젖지만 금세 마른다. 그래도 잘 마르는 기능성 소재를 입는 게 좋을 듯싶다.
계곡물이 계속 옆에 있기 때문에 자주 들어가게 된다. 특히 초반에 달궈진 몸을 식히기 위해 입수를 꽤 하게 된다. 그러나 계곡 놀이에 시간을 너무 뺏기지 말아야 한다. 6㎞ 정도를 돌길과 물길로 내려가야 한다. 성인 남성의 평균 도보 속도가 평지에서 시속 5㎞ 정도인데, 산길에선 절반 아래로 준다. 물이 흐르는 계곡에서는 속도가 3분의 1 정도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당일치기 여행을 계획했다면 조금 서두르는 편이 좋다.
방태산 트레킹에서 제대로 입수할 만한 곳은 10곳 정도다. 흔히 ‘소’라고 부르는 꽤 깊고 넓게 물이 고여 있는 곳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 트레킹 내내 주변에서 “조금 더 가면 계곡과 길이 분리된대. 여기서 한 번 더 쉬자” 등의 말이 들리는데, 끝날 때까지 계곡과 함께 가니 조바심은 내지 않아도 된다. 다만 하류로 갈수록 물이 따뜻해지고, 고기를 구워 먹는 사람들도 나온다.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다. 금지돼 있지만….
그렇게 걷다 쉬다 내려가다 보면 여정이 끝나간다. 잘 닦아놓은 길이 아니기 때문에 걸을 때 조심해야 한다. 물이끼가 낀 바위도 있고, 밟기 힘든 뾰족한 바위 모서리로만 몇 걸음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물에 쓸려 발꿈치가 벗겨지기도 하는데, 양말을 신으면 낫다. 일행 중에도 발꿈치 부상자가 있었다.
사람이 많아지고 차량이 보이기 시작하면 방태산 계곡 트레킹이 끝났다는 신호다. 트레킹을 마친 후 가민(Garmin) GPS를 살펴보니 이날 총 12㎞ 정도를 걸었고, 540m 정도의 ‘획득고도’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산을 오를 때만큼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잘 쉬었고, 시원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일행 중 한 명이 말했다. “이 시원한 기억으로 다음 1주일을 사는 거지.”
인제=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
오전 6시에 그렇게 강원 인제군 기린면으로 떠났다. 폭염이 절정이던 때라 피서객이 새벽부터 몰리면서 서울~양양 고속도로는 홍천군까지 막혔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인제군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예정된 시간보다 두 시간 지체됐다.
보통 방태산(芳台山) 트레킹은 방동약수터에서 시작한다. 해발 약 400m의 산 중턱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터미널 등에서 택시를 타면 이곳까지 올 수 있다. 택시비는 3만원 정도. 방동약수는 탄산과 철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콜라나 사이다 맛을 생각하고 물을 들이켰다. 청량감보다는 철분을 들이키고 있는 듯 ‘쇠맛’이 느껴졌다. 물맛을 본 한 초등학생은 “이게 무슨 맛이야”라고 투덜거렸지만 얼굴은 웃고 있었다.
방태산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트레킹을 시작하려면 방동약수터에서 도로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차가 한 대 지나가면 오르던 사람들이 콘크리트 포장도로 밖으로 잠시 비켜줘야 할 정도의 너비 폭이다. 방태산 계곡 트레킹이 시작되는 곳은 해발 840m 지점이다. 성인 남성은 1시간, 여성은 1시30분 정도의 산행으로 440m 정도 올라가야 계곡 트레킹을 시작할 수 있다.
오르는 길은 북한산과 달리 정상까지 모두 콘크리트로 돼 있어 그렇게 힘들지 않다. 이날 산행의 유일한 오르막이었다. 산을 오를수록 슬슬 휴대폰 신호가 안 잡혀 먹통이 된다.
정상에는 간이매점과 주차장이 있다. 화장실도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옷을 갈아입는 사람도 꽤 된다. 위로 올라갈수록 기온이 내려간다. 낮 12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는데, 기온은 30도 초반이었다. 바람도 열풍이 아니라 시원함이 섞여 있었다. 올여름 에어컨이 없는 야외에서 처음으로 느낀 시원함이었다.
잠깐의 휴식 뒤 본격적인 계곡 트레킹을 시작했다.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2㎞ 정도는 비포장 흙길을 걸어야 한다. 계곡은 보이지 않고 나무가 가득하다. 도란도란 동행자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다.
계곡에 접어들면 대화를 할 여유가 없어지기 때문에 이 구간에서 하는 게 좋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며 내려가다 보면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다. 저 멀리서 물소리가 들려온다. 물소리가 커지면 마침내 계곡이 눈에 들어온다. 흙길은 그곳에서 종료된다.
계곡 초입엔 물이 많지 않았다. 자갈과 바위가 있고 그 사이로 얕은 물이 흐른다. 발을 담가본다. 상류여서 그런지 물이 제법 차다. 목욕탕의 냉탕이 18도 수준인데, 재보니 21도 안팎이었다. 올해 폭염으로 평안북도와 함경남도의 바닷물도 25도 수준이라고 한다.
이제 길이 사라진다. 중간중간 선행자들이 닦아놓은 좁은 길이 나오긴 하지만 연속성이 없다. 계곡물을 따라 낮은 곳으로 함께 흐르는 것이다. 방태산 계곡 트레킹의 묘미다. 계곡을 따라 계속 아래로 내려가다가 몸이 뜨거워지거나 지치면 계곡물에 몸을 담근다. 길은 없지만 계곡의 가장자리를 따라가면 비교적 편하게 갈 수 있다. 계곡 왼쪽으로 가다가 바위가 길을 막으면 계곡을 건너 오른쪽으로 넘어가야 한다. 신발이 젖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애초에 하지 않는 게 좋다. 처음부터 발을 물에 넣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 신발은 트레킹을 하는 동안 절반은 물속에 있다. 그래서 아쿠아슈즈나 샌들을 신고 오는 사람도 있지만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길이 없고 자갈과 뾰족한 바위를 계속 밟아야 하니 등산화나 트레킹화가 훨씬 낫다. 옷은 흠뻑 젖지만 금세 마른다. 그래도 잘 마르는 기능성 소재를 입는 게 좋을 듯싶다.
계곡물이 계속 옆에 있기 때문에 자주 들어가게 된다. 특히 초반에 달궈진 몸을 식히기 위해 입수를 꽤 하게 된다. 그러나 계곡 놀이에 시간을 너무 뺏기지 말아야 한다. 6㎞ 정도를 돌길과 물길로 내려가야 한다. 성인 남성의 평균 도보 속도가 평지에서 시속 5㎞ 정도인데, 산길에선 절반 아래로 준다. 물이 흐르는 계곡에서는 속도가 3분의 1 정도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당일치기 여행을 계획했다면 조금 서두르는 편이 좋다.
방태산 트레킹에서 제대로 입수할 만한 곳은 10곳 정도다. 흔히 ‘소’라고 부르는 꽤 깊고 넓게 물이 고여 있는 곳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 트레킹 내내 주변에서 “조금 더 가면 계곡과 길이 분리된대. 여기서 한 번 더 쉬자” 등의 말이 들리는데, 끝날 때까지 계곡과 함께 가니 조바심은 내지 않아도 된다. 다만 하류로 갈수록 물이 따뜻해지고, 고기를 구워 먹는 사람들도 나온다.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다. 금지돼 있지만….
그렇게 걷다 쉬다 내려가다 보면 여정이 끝나간다. 잘 닦아놓은 길이 아니기 때문에 걸을 때 조심해야 한다. 물이끼가 낀 바위도 있고, 밟기 힘든 뾰족한 바위 모서리로만 몇 걸음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물에 쓸려 발꿈치가 벗겨지기도 하는데, 양말을 신으면 낫다. 일행 중에도 발꿈치 부상자가 있었다.
사람이 많아지고 차량이 보이기 시작하면 방태산 계곡 트레킹이 끝났다는 신호다. 트레킹을 마친 후 가민(Garmin) GPS를 살펴보니 이날 총 12㎞ 정도를 걸었고, 540m 정도의 ‘획득고도’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산을 오를 때만큼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잘 쉬었고, 시원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일행 중 한 명이 말했다. “이 시원한 기억으로 다음 1주일을 사는 거지.”
인제=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