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세계 기업 인수합병(M&A)시장의 가장 큰 뉴스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영국 반도체회로 설계회사 ARM 인수였다. 인수 금액이 240억파운드(약 33조원)로 일본 M&A 사상 최대였다. 인수 조건도 파격적이었다. 상장사인 ARM 주식을 시장평가액보다 43% 높은 가격에 100% 사들였다.

손 회장은 그해 말, 소프트뱅크의 ‘300년 기업’ 청사진을 제시하며 ‘탈(脫)통신’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미국 이동통신회사 스프린트를 인수해 일본 이동통신업계 1위였던 NTT도코모를 제친 지 3년 만이었다.

손 회장이 꿈꾸는 ‘300년 기업’은 지속성장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최소한 300년을 내다보는 안목을 갖고, 시대를 주도하는 기술기업들과 연대하겠다는 경영 전략이기도 하다.

‘300년 기업’ 구상을 실현하는 ‘탈통신’은 소프트뱅크의 지향점이자 자연스러운 사업 결과물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소프트뱅크가 시장을 변화시키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변신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탈통신’으로 이어지고 있어서다. 소프트뱅크는 1981년 소프트웨어 유통업으로 출발해 인터넷, 광대역 인프라, 이동통신 등으로 본업을 바꿔 나갔다. 그 당시 가장 유망했던 이른바 ‘플랫폼(platform) 산업’들이다.

소프트뱅크는 ARM 인수로 세계 스마트폰용 반도체회로 설계시장의 90%를 장악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끄는 사물인터넷(loT)의 핵심 역량을 확보한 것이다. 손 회장이 최근 “시간과 두뇌의 97%를 바치고 있다”는 인공지능(AI) 기반 기술도 ARM에서 나온다. “과감한 M&A로 성장한 소프트뱅크는 ‘기업’이 아닌 ‘미래’를 사들이고 있다”(《손정의 300년 왕국의 야망》의 저자 스키모토 다카시)는 평가가 나온다.

손 회장의 질주는 거침없다.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등과 함께 1000억달러 규모의 세계 최대 기술펀드인 ‘비전펀드’를 설립했다. 소프트뱅크가 지난해 투자한 기업만 40개, 투자 금액은 370억달러에 달한다.

실적 둔화로 고민 중인 국내 이동통신사들도 ‘탈통신’이 화두(話頭)다. 시장이 포화상태인 데다 통신시장에 정부 규제가 집중되고 있어서다. M&A와 5세대(5G) 이동통신을 기반으로 한 미디어, AI, 보안 사업 결합 등으로 새 성장 동력 찾기에 분주하다. 소프트뱅크의 광폭(廣幅) 행보가 더욱 주목되는 이유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