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시장·각국 정책변화 주시
개별종목 깊게 분석하고 투자를
韓, 美처럼 금리인상 쉽지 않아
IT·유화 등 원화약세 수혜株 관심
박정구·이서구 대표가 이끄는 가치투자자문은 한발 빨랐다. 주가가 크게 오르기 이전인 지난해 11월 이미 지분 5% 이상을 사들인 뒤 기다렸다. 중국이 폐지 등 고체 폐기물의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계획을 처음 밝힌 지난해 7월부터 이 종목에 관심을 가졌다. 원지는 폐지를 가공해 만든다. 중국이 수입을 중단하면 공급이 넘치고 폐지값이 급락한다. 원지 제조업체는 원재료값이 줄어 수익성이 높아진다.
이 대표는 “해외 폐지 가격은 일찌감치 크게 떨어졌는데 국내 폐지값은 작년 말까지도 높은 수준이었다”며 “시차를 두고 국내 폐지값도 떨어져 관련 업체가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하고 미리 움직인 것이 적중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장비·소재株 주목”
박 대표가 2002년 설립한 가치투자자문은 국내 투자자문 및 운용업계에서 최상위권의 장기수익률을 자랑한다. 운용을 시작한 2003년 이후 지난달 말까지 누적 수익률이 2251%에 달한다. 연 복리 수익률로 환산하면 연 23%가량에 달한다. 2003년 이후 수익률로 비교가 가능한 신영마라톤펀드(700.1%), 미래에셋디스커버리 1호펀드(524.1%) 등의 성과를 크게 앞지른다. 박 대표는 “국내외 시장과 각국의 정책 변화를 주시하며 장차 상승할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싸게 거래되는 종목을 찾아낸 게 수익에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국내 반도체 장비 및 소재업에 주목하고 있다. 이 대표는 “중국 업체들이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반도체 제조업에 뛰어들면서 반도체 시장의 ‘치킨 게임’이 격화될 것”이라며 “시장점유율을 높이려 경쟁하는 과정에서 반도체 장비와 소재 수요가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본다”고 진단했다. 가치투자자문은 반도체 장비업체 테크윙, 반도체 제조 공정용 재료업체 디엔에프 등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고 있다.
최근엔 원화 약세 수혜주 발굴에도 힘을 쏟고 있다. 박 대표는 “미국은 금리인상 경로를 착실히 걷고 있지만 한국은 가계부채 규모와 수년째 연 2~3%대에 정체돼 있는 경제성장률을 고려할 때 미국에 발맞춰 금리를 올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정보기술(IT)이나 석유화학 등 원화 약세로 수혜를 볼 업종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고 싼 주식을 찾고 있다”고 소개했다.
◆‘성장 중인데 싼 종목’ 찾기 ‘올인’
가치투자자문은 박 대표의 가치투자 철학에 공감한 이 대표가 2007년 합류하면서 공동대표 체제로 변신했다. 개인과 국내 기업, 미국 헤지펀드 등으로부터 총 2000억원 상당의 자금을 맡아 운용하고 있다.
가치투자자문은 본질가치보다 저평가된 주식은 결국 제 가치를 찾아간다는 가정 아래 장기 투자하는 방식을 추구한다. 단순히 주가수익비율(PER:주가/주당순이익)이나 주가순자산비율(PBR:주가/주당순자산)이 절대적으로 낮은 종목을 찾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대표는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현재 가격이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상태인지를 따져보는 미래성장가치 부문을 전통적인 자산가치, 수익가치와 함께 중시한다”며 “성장하고 있으면서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이 적정선에 있는 종목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시장이 좋지 않은 때일수록 개별 종목을 깊이 뜯어보고 투자해야 한다고 두 사람은 조언했다. 박 대표는 “시장이나 특정 업종의 성장 전망에 기대는 투자는 시장이 흔들릴 때 힘들 수밖에 없다”며 “개별 기업의 현황과 전망을 넓고 깊게 분석하는 ‘보텀 업 리서치’에서 투자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업 모델이 좋은 기업에 투자했다면 단기실적 부침에 휘둘리지 말라고도 당부했다. 이 대표는 “한 분기 실적이 좋을 것 같아서 매입하고, 다음 분기 실적이 나쁘면 파는 등의 지나친 모멘텀 투자는 장기 가치투자자에게 기회를 줄 뿐 본인은 손실을 보기 쉽다”며 “시간을 충분히 들여 연구하고 투자한 뒤엔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