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 근무하며 원세훈·전교조 문건 작성
'재판거래 문건' 부장판사 소환… "성실히 수사에 임하겠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며 재판거래 의혹 문건을 다수 작성한 현직 부장판사가 검찰에 소환됐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봉수 부장검사)는 13일 울산지법 정모(42) 부장판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 중이다.

검찰은 정 부장판사를 상대로 의혹 문건들을 어떤 경위로 작성했고 어디까지 보고했는지, 법원행정처를 떠난 뒤에도 관련 문건을 만든 이유는 무엇인지 캐묻고 있다.

정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9시50분께 검찰에 출석하며 "최대한 성실히 수사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로 문건을 작성했느냐', '판사들 동향은 왜 파악했느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정 부장판사는 2013년 2월부터 2년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으로 근무하면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관련 검토',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 등 재판거래 의혹이 제기된 문건들을 다수 작성했다.

그는 2015년 2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댓글 사건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작성한 관련 문건에서 재판장과 주심 판사의 사법연수원 기수, 출신 학교 등을 정리하고 재판부의 판결 성향을 분석했다.

항소심 결과에 따른 청와대·정치권의 예상 반응과 함께 상고법원 설치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구상하기도 했다.

이보다 앞서 2014년 12월 작성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 문건에서는 시나리오별 청와대와 대법원의 득실을 따진 뒤 고용노동부의 재항고를 받아들이는 게 양측에 모두 이득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 문건에는 전교조 손을 들어준 서울고법 결정에 청와대가 크게 불만을 표시했다거나, 대법원이 하급심 결정을 뒤집는 반대급부로 상고법원 입법 추진과 법관 재외공관 파견을 언급하는 등 거래를 의심할 만한 내용이 포함됐다.

정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으로 옮긴 뒤에도 법관들 익명 커뮤니티 동향을 파악해 법원행정처에 보고하는가 하면 '현안 관련 말씀자료',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 등 재판거래가 의심되는 문건을 생산했다.

그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면담을 앞둔 2015년 7월 작성한 이들 문건에서 원 전 원장 사건과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긴급조치 사건 등을 열거하며 "사법부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왔다"고 적었다.

검찰은 이들 문건의 작성 경위와 구체적 실행 여부 등을 따져 정 부장판사에게 직권남용·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판단할 방침이다.

검찰은 지난 8일 창원지법 마산지원 김모(42) 부장판사를 시작으로 법원행정처 근무 시절 의혹 문건을 작성한 현직 판사들을 잇달아 소환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14일에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일본 전범기업 상대 소송을 둘러싼 재판거래 의혹에 연루된 김기춘(79)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출석을 통보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