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프랜차이즈 피부과의원 창업
환자 맞춤형 화장품 사업으로 '대박'
매각 후 49% 지분으로 계속 경영
화장품 본궤도 오르면 의료기기 도전
“닥터지를 글로벌 브랜드 반열에 올려놓으려면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지난달 스위스 최대 유통기업 미그로스그룹에 고운세상코스메틱(브랜드명 닥터지·Dr.G) 지분 51%를 약 330억원에 매각한 안건영 대표(사진)는 1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돈보다 닥터지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는 게 개인적으로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49%의 지분을 보유한 2대 주주로 계속 경영을 맡는다. 국내 최초 프랜차이즈 병원인 고운세상피부과의원 창업자기도 한 안 대표는 창업을 꿈꾸는 의사들에게 “진료와 사업을 분리하고 올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앙대 의대를 졸업한 피부과 전문의인 안 대표는 일본 준텐도대 유학 시절 경험이 의사로서 그의 자세를 바꿔놨다고 했다. 의료진이 환자의 눈높이에 맞춰 병세와 치료 방법을 세세하게 설명하는 탈권위주의적인 병원 문화가 그에겐 충격적이었다. 1998년 서울 돈암동에 고운세상피부과의원을 낼 때 개원 철학을 ‘환자도 고객이다’로 정했다. 외환위기 직후였지만 ‘환자를 왕처럼 모신다’는 소문에 환자가 줄을 이었다. 불과 2년 만인 2000년 서울 강남에 2호점, 분당에 3호점을 냈다. 한국에서 병원을 프랜차이즈화한 첫 시도였다.
안 대표는 마케팅과 채용, 구매 등 의료 외 부문을 따로 떼어내 메디링크라는 병원 경영지원회사(MSO)를 설립했다. 그는 진료를 파트너 의사들에게 맡기고 사업에 전념했다. 메디링크는 사업 영역을 화장품으로 확장했고, 2003년 독립한 고운세상코스메틱으로 성장하는 기반이 됐다.
화장품사업을 시작한 건 “내 피부에 맞는 화장품을 추천해달라”는 환자의 요청 때문이었다. 환자들에게 피부 상태에 맞는 맞춤 화장품을 추천하다 보니 매일 쓰는 화장품이 피부에 약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환자 맞춤형 화장품을 자체 제조한 이유다.
홍콩에 거주하던 단골 환자와의 인연으로 사업을 해외로 넓혔다. 2007년 아시아 최대 화장품 유통업체 사사(SASA)와 계약을 맺고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대만에 수출을 시작했다. 30여 개국에 연간 약 1000만달러어치를 수출하고 있다.
미그로스가 인수 제안을 해온 건 지난해 말이었다. 처음엔 거절했다.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현지 업체와 협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협상이 결렬되자 미그로스가 다시 제안해왔다. 안 대표도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는 미그로스의 사업철학에 끌리기 시작했다.
안 대표는 당분간 미그로스와 손잡고 닥터지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그는 “닥터지가 본궤도에 오르면 의료기기사업을 키워보고 싶다”고 했다. 의료기기 사업부인 아그네스는 팔지 않은 이유다. 안 대표는 “진료 노하우로 새 치료법과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것은 의사의 또 다른 보람”이라며 “레이저와 고주파 등 미용 의료기기는 국내 의료기기업체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제2의 닥터지’ 신화를 꿈꾸는 의료인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도 안 대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다. 그는 “국내에만 1만 개가 넘는 화장품회사가 있고 중국 화장품 회사도 빠른 속도로 한국을 뒤쫓고 있다”며 “사업에 성공하려면 모든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