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특허괴물’이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공격하는 일이 일어났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출자해 만든 특허관리전문회사 펀드인 KDB인프라IP캐피탈펀드가 팬택의 독자기술을 인수해 미국 애플을 상대로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했다. 이 펀드가 당초 해외 특허괴물을 방어할 목적으로 출범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번 공격은 그 자체로 반전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해외 특허괴물의 ‘먹잇감’이 돼 온 국내 기업들이 이번 사건을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다.

해외 특허괴물이 국내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미국 내 특허소송만 지난 1분기에 36건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났다. 과거 삼성전자에 집중되던 소송이 최근 LG전자 등으로 확산하고 있는 점도 새로운 특징이다. 이대로 가면 다른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중견기업이 해외 특허괴물의 사정권에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로 보인다. 이렇게 공격에 노출되다 보니 특허괴물에 대한 국내 기업의 인식이 좋을 리 없다.

하지만 대량의 특허권을 사들여 소송 및 특허사용료(로열티) 계약을 통해 수익을 얻는 특허괴물은 엄연한 ‘특허 비즈니스 모델’의 일종이고, 선진국에서는 ‘특허관리전문회사(NPE)’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쉽게도 국제특허출원 건수에서 세계 5위(2016년 기준)를 달리는 한국에서는 이런 특허관리전문회사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게 현실이다. 그만큼 특허관리가 전문적이지 못하고 국내 관련 시장도 취약하다.

치열해지는 글로벌 지식재산 전쟁에서 생존하려면 특허관리가 더욱 전문화되고 고도화돼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때 정부가 민간기업들의 출자를 받아 직접 특허관리전문회사를 출범시키기도 했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글로벌 기업의 공격을 막아내기 어렵다. KDB펀드의 진화가 보여주듯이 금융계·산업계 주도 특허관리전문펀드 형태가 훨씬 효과적인 대응방법이다. 국내 기업이 보유한 특허가 선진국 특허괴물의 손으로 헐값에 넘어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특허관리전문회사가 더욱 많아져야 한다. 중국으로의 기술유출까지 더해지는 최근 상황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