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장(사장).
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장(사장).
"전 진짜 LG전자 스마트폰이 잘되길 바랍니다. (어려운 글로벌 시장 상황에서)국내 2개사 정도는 버텨야 서로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장(사장)은 10일(현지시간) '갤럭시노트9' 언팩 이후 뉴욕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펜을 탑재한 'LG Q8'과의 차별성을 묻는 질문에 이같은 답을 내놨다. 경쟁사 제품보다 잘난 점을 물었는데 오히려 경쟁사를 걱정하는 제스처를 취한 것.

Q8은 노트9과 펜이 달렸다는 점을 빼곤 결이 다른 제품이다. 50만원대 가격으로 100만원대인 노트9과 타깃층도 다르다. 스펙만 봐도 경쟁 제품이라고 하기엔 차이가 크다. 고 사장이 충실한 답을 한들 삼성에게나 LG에게나 득될 게 없었다.

고 사장은 "중국 시장에서 외롭다"며 LG전자를 격려했다. 동문서답(東問西答)이었다. 대신 국내 스마트폰 산업 부흥을 위해 국내 기업이 같이 잘해야 한다는 우문현답(愚問賢答)이기도 했다. 이 발언의 배경은 중국 시장에서 고전 중인 국내 제조사들의 현주소였다.

최근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샤오미, 화웨이 등 중국 제조사들은 삼성·LG전자 등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점유율을 갉아먹고 있다. 글로벌 1위인 삼성전자조차 중국 시장에서 2015년 5위권 밖으로 밀려난 이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올 2분기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 점유율은 0.8%로, 올 1분기 1.3%보다 0.5%포인트 더 떨어졌다.

LG전자는 말할 것도 없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스마트폰 사업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몇해전부터는 중국 시장 철수설까지 불거져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고 사장은 LG전자가 삼성전자를 자극하는 진정한 '라이벌'이 되길 당부했다. 국내 제조사끼리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중국 제조사들을 견제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LG전자가 잘하면 삼성전자는 더 잘할 수 있다는 뉘앙스도 풍겼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라이벌은 경쟁이라는 의미 외에 서로의 발전을 돕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국내 제조사 간 치열한 품질 경쟁은 소비자에게도 좋은 일이다. 소비를 결정하는 중요 요소인 '가격'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아져 질 좋은 제품을 싸게 구입할 수 있어서다.

경쟁이 존재하는 어떤 분야에서든 라이벌은 필요하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1998년 마크 맥과이어의 70홈런도, 2003년 이승엽의 56개 홈런 신기록도 새미 소사와 심정수라는 걸출한 라이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소위 '엎치락뒤치락'이 상승 효과를 낸 것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스마트폰과는 달리 글로벌 가전 시장에선 엎치락뒤치락하며 상승 효과를 얻고 있다. LG전자가 새 제품을 내놓으면 삼성전자는 곧장 신제품을 출시했고, 삼성전자가 신기술을 탑재하면 LG전자가 또 다른 기능으로 대응했다. 이런 경쟁은 양사 가전제품의 품질을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글로벌 시장을 양분하는 자양분이 됐다. 고 사장은 가전 분야처럼 양사간 치고 받는 선의의 경쟁을 기대한 것으로 짐작된다.

고 사장은 작년 8월 독일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V30이 잘되길 바란다"며 LG 스마트폰을 격려한 적이 있다. 자사 신제품 노트8을 디스한 광고까지 낸 LG전자였는데 말이다. 그땐 승자의 립서비스 쯤으로 들렸다.

그러나 올해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고 사장의 이번 발언이 진심으로 들리는 건, 그간 중국 시장에서 추락한 삼성 스마트폰의 점유율이 떠올라서일까.

뉴욕(미국)=이진욱 한경닷컴 기자 showg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