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참가 박기동씨 "감개무량해"
"이름밖에 기억 못 하는 동생들…만날 생각에 밤잠 설쳐요"
"헤어질 당시 동생들이 여섯 살, 두 살 정도밖에 되지 않아 사실 이름밖에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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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광복절 계기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가하게 된 박기동(82·경기 안산) 할아버지는 북한에 남겨두고 온 여동생 선분(73)씨와 남동생 혁동(68)씨를 만날 생각에 들뜬 마음이지만, 동생들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이름뿐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씨는 "북쪽에 거주했던 부모님과 함께 상봉하길 원했으나 부모님은 돌아가셨다는 통지를 받았다"며 "(이번에) 형제들의 생사가 확인되고 상봉 의사가 있다고 회보가 돼서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황해도 연백군(현재는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없어짐)이 고향인 박씨는 3남 2녀 중 장남으로, 6·25 전쟁 발발 당시 서울에서 배재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보인상업고등학교를 다니던 6살 위의 삼촌과 함께 자취 생활을 하던 중 전쟁을 맞았다.

고향에서 살던 박씨의 가족은 전쟁이 일어나면서 강화군 교동면으로 피란을 왔지만, 부모님이 어린 두 동생을 데리고 식량을 가지러 고향 집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면서 영영 헤어지게 됐다.

박씨는 전쟁이 끝나고 강화군 교동도의 피란민 수용소에서 둘째 동생 승봉(남)씨와 넷째 동생 선녀(여)씨를 만나 이런 사실을 알게 됐다.

북한에 남겨진 막내 남동생에 대해서는 특별히 기억나는 게 없다는 박씨는 여동생 선분씨에 대해서는 "어렸을 때 (동생의) 손을 잡고 동네를 다녔다"는 추억의 한 토막을 끄집어냈다.

박씨는 동생들과 만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감개무량했다며 상봉 날짜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설레 밤잠을 설친다고 했다.

그는 동생들에게 줄 선물로 속옷과 치약, 칫솔 등 생활용품을 많이 준비했다며 "겨울에 추울 때 따뜻하게 입으라고 겨울 잠바도 샀다"고 말했다.

박씨는 부모님과 함께 찍은 옛날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사진에 있는 갓난아기가 북한에 있는 여동생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