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최대전력수요가 정부 예상을 넘어서고 한국전력이 상반기 적자로 전환하면서 탈(脫)원전 반대 진영이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원자력학계를 중심으로 탈원전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며 정책 수정을 요구하고 나섰는데, 정부는 "에너지전환 정책에는 별문제가 없으며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이어서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한국원자력학회와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 과학기술포럼 등 3개 단체는 16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에 탈원전 정책 수정을 요구했다.
이들은 특히 최근 불거진 전력수요 전망 오류와 한국전력 적자, 원전 수출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 장기 전력수요 전망 문제없나
정부가 작년 말에 발표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올여름 최대전력수요를 8천750만kW로 예상했다.
그러나 올여름 최대전력수요는 지난달 23일 사상 처음으로 9천만kW를 돌파했으며, 그다음 날에는 9천248만kW를 찍었다.
정부는 예상치 못한 폭염을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원자력계는 정부가 탈원전을 정당화하려고 전력수요를 낮춰 잡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원자력학회는 "정부는 (수요 예측 오류의 원인이) 기상이변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현재 전력수급 상황은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정확히 따르고 있으며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최대전력수요를 과소 예측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올여름 수요를 제대로 전망하지 못한 점을 인정하면서도 수요 예측 모델 자체에는 문제가 없으며 발전설비가 부족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올여름 기온을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모델에 입력하면 올여름 실제 수요와 거의 비슷하게 나온다"며 "이상기온이 앞으로 계속되더라도 전력수요는 크게 증가하지 않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 한전 적자 계속되면 전기요금은
작년 상반기 연결 기준 2조3천97억원 영업이익을 기록한 한전은 올해 상반기 8천147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연료비 상승과 정비 중인 원전의 가동률 저하에 따른 액화천연가스(LNG) 발전량 구매 증가가 주요 원인이다.
그러나 한전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이 탈원전 정책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 때문에 한전 실적이 더 나빠진 면도 있다.
한수원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신규 원전 6기 백지화 비용 7천282억원을 2분기에 반영했다.
원자력학회는 "불분명한 이유로 월성 원전 1호기를 조기 폐쇄한 것은 분명히 에너지전환 정책에 따른 것이며 이로 인해 한전의 적자액이 크게 늘었다"고 강조했다.
한전의 적자가 계속될 경우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될 수 있다.
정부와 한전은 계절적으로 실적이 가장 좋은 3분기 실적이 반영되면 연간 흑자가 가능하며 아직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없다고 보고 있다. ◇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원전 수출
국내 원전산업의 탈원전 충격을 완화할 원전 수출은 성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수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했던 사우디아라비아 원전사업의 예비사업자로 선정됐지만, 기대와 달리 다른 4개 경쟁국 모두 예비사업자에 포함되면서 여전히 경쟁이 치열하다.
도시바와 영국 뉴젠 인수를 협상하는 한전은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상실했다.
영국 정부가 제시한 새로운 사업모델을 중심으로 협상을 계속하고 있지만, 충분한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인수를 포기하는 게 더 경제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정부는 원전 수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재차 밝혔지만, 원자력계는 수출이 탈원전 때문에 더 어려워졌다고 주장한다.
원자력학회는 "원전 수입국이 국내 원전 부품 공급망이 붕괴할 위험에 빠질 우리나라를 원전사업 파트너로 선뜻 선정하기는 쉽지 않다"며 정부가 국내 원전산업 유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