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겪는 '위력 상황' 이해 못해…젊은 재판관들 정신차려야"
남성들도 일부 참가…"사법부, 무능·무기력 스스로 드러내"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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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안희정 전 충남지사 무죄 선고를 규탄하는 집회에서는 그간 미투운동이나 성차별 철폐 요구의 주축이었던 청년층뿐만 아니라 나이 앞자리 숫자가 5 또는 6인 참가자들도 쉽게 눈에 띄었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주최한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못살겠다 박살내자'라는 이름의 집회에는 주최측 추산 약 2만명이 참가했다.

20∼30대가 주축인 다른 미투 관련 집회나 여성단체 집회와 달리 이날 집회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장년층도 다수 참가했다.

참가 여성 정 모(57) 씨는 "집회 슬로건에 동의한다. 안희정 사건이 이슈가 돼서 그렇지 이전부터 이런 일은 있어 왔다"며 "위력이 무엇인지, 여성들이 겪는 위력 상황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재판부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20∼30년 전 제가 젊었을 때는 말도 못 꺼내고 불편해하기만 했다면 지금 젊은 친구들은 참지 않는 것 같다"며 "젊은 친구들에게 빚지고 있다.

세상은 달라졌는데 변화가 전혀 없다는 것에 선배로서 미안하다"고 안타까워했다.

다른 여성 조 모(52) 씨는 "안희정 판결을 보고 화가 났다"며 "세상이 여자들에게 가하는 불공평함을 몸으로 느껴왔다. 성폭력과 성희롱이 만연한 세상"이라고 분노했다.

오 모(62) 씨도 "여성들이 더 강경해야 한다. 김지은 씨처럼 용기를 낸 것을 연애관계라고 치부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며 "젊은 재판관들이 정신 차려야 한다.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가자 김 모(54) 씨는 "여자들이 저지른 잘못은 별것 아니라도 처벌되고, 남자들은 큰 잘못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다"며 "이것은 불공평한 국가"라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는 안 전 지사 판결에 문제의식을 품는 남성들도 일부 동참했다.

그간 같은 성격으로 열린 일부 집회는 '생물학적 여성'에게만 참가를 허용했으나 시민행동은 성별 제한을 두지 않았다.

남성 박 모(44) 씨는 "사법부는 권위를 앞세워 자신들의 전능함을 일단 믿으라고 주장해왔는데 이제 무능함과 무기력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며 "오늘 시위는 그간 누적된 사법제도의 폐단이 임계점을 넘었음을 알리는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임신부인 배우자와 함께 집회에 나온 김 모(34) 씨는 "앞으로 태어날 아이가 지정 성별로는 여자아이"라며 "태어날 아이에게는 배우는 교육과 현실이 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송 모(24) 씨는 "편파수사, 편파판결이다. 사회가 과도기를 겪고 있는 것 같은데 버텨내는 게 이기는 길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서울서부지법이 지난 14일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후 법원에 대한 규탄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