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보다 더 지옥 같았던 일본군 위안부의 충격적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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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숨 씨 '흐르는 편지' 출간
‘어머니, 나는 아기를 가졌어요. 어머니, 나는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어요, 눈동자가 생기기 전에…심장이 생기기 전에….’
김숨(사진)의 소설 《흐르는 편지》는 한 소녀의 충격적인 편지로 시작된다. 하지만 이 편지는 어느 곳에도 보내지 못한 채 물결과 함께 사라진다. 그저 어느 외딴곳 강가의 정처 없이 흐르는 물결 속에 손가락으로 그어볼 뿐이다.
소설은 만주의 한 위안소에 살고 있는 열다섯 살 꽃다운 나이의 일본군 위안부 소녀 ‘금자’의 이야기다. 비단 공장에 취직시켜주겠다는 말에 속아 중국까지 끌려온 금자는 일본 군인에게 몸을 빼앗기는 고통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불현듯 그의 몸에 아기가 찾아왔지만 마냥 행복해할 수 없다. 강제로 만들어진 아이를 낳아 키울 수도, 설령 키운다고 할지언정 진심을 담을 수도 없는 일이다. 여성의 모성 본능보다는 극한의 억압으로부터 도피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본능에 더 이끌린 모습이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이 박탈당하는 극한 상황에서 한 소녀는 한 아이를 품으며 생명에 대한 가치를 찾아간다.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죽지마…살아…제발 아무도 죽지마… 아가야, 죽지마…. 내 아가, 내 아가….’
2016년 내놓은 장편소설 《한 명》은 살아있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 수백 개를 직접 인용하는 방식으로 쓴 반면, 이번 소설은 죽음보다 더 지옥일 것 같은 위안부들이 살아온 배경과 일상, 이들의 삶을 서사시 형식의 독백으로 재구성했다. 김복동 할머니(92)와 길원옥 할머니(90)의 증언이 소설에 녹아 한편의 르포르타주를 보는 느낌을 준다. 저자는 ‘구체적 증언’이 아니라 또 다른 힘을 지닌 ‘시적 증언’으로 소설을 이어간다. 상상하지 못했던 위안소와 위안부들의 삶이 소설을 통해 머릿속에서 하나둘 그려질 때마다 숨이 턱 막히고 이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먹먹한 느낌을 준다. 이 모든 게 소설로 포장된 진실임을 알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피해자, 일본인은 가해자라는 이분법적인 책임 분류에 작가가 집착하지 않은 점도 신선하다. 시대가 만든 비극 같은 공간 속에서 금자는 자신뿐만 아니라 죽음 앞에 두려워하는 일본 군인에게 측은한 위로를 던진다. 일본이 이겨야 살고, 살아야 나갈 수 있는 복잡 미묘한 감정,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매일 흐르는 강물에 새기면서 하루하루를 버텨온 위안부들의 기억을 보듬으며 작가는 공동체의 집단적 기억이 돼야 한다고 조심스레 외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김숨(사진)의 소설 《흐르는 편지》는 한 소녀의 충격적인 편지로 시작된다. 하지만 이 편지는 어느 곳에도 보내지 못한 채 물결과 함께 사라진다. 그저 어느 외딴곳 강가의 정처 없이 흐르는 물결 속에 손가락으로 그어볼 뿐이다.
소설은 만주의 한 위안소에 살고 있는 열다섯 살 꽃다운 나이의 일본군 위안부 소녀 ‘금자’의 이야기다. 비단 공장에 취직시켜주겠다는 말에 속아 중국까지 끌려온 금자는 일본 군인에게 몸을 빼앗기는 고통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불현듯 그의 몸에 아기가 찾아왔지만 마냥 행복해할 수 없다. 강제로 만들어진 아이를 낳아 키울 수도, 설령 키운다고 할지언정 진심을 담을 수도 없는 일이다. 여성의 모성 본능보다는 극한의 억압으로부터 도피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본능에 더 이끌린 모습이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이 박탈당하는 극한 상황에서 한 소녀는 한 아이를 품으며 생명에 대한 가치를 찾아간다.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죽지마…살아…제발 아무도 죽지마… 아가야, 죽지마…. 내 아가, 내 아가….’
2016년 내놓은 장편소설 《한 명》은 살아있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 수백 개를 직접 인용하는 방식으로 쓴 반면, 이번 소설은 죽음보다 더 지옥일 것 같은 위안부들이 살아온 배경과 일상, 이들의 삶을 서사시 형식의 독백으로 재구성했다. 김복동 할머니(92)와 길원옥 할머니(90)의 증언이 소설에 녹아 한편의 르포르타주를 보는 느낌을 준다. 저자는 ‘구체적 증언’이 아니라 또 다른 힘을 지닌 ‘시적 증언’으로 소설을 이어간다. 상상하지 못했던 위안소와 위안부들의 삶이 소설을 통해 머릿속에서 하나둘 그려질 때마다 숨이 턱 막히고 이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먹먹한 느낌을 준다. 이 모든 게 소설로 포장된 진실임을 알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피해자, 일본인은 가해자라는 이분법적인 책임 분류에 작가가 집착하지 않은 점도 신선하다. 시대가 만든 비극 같은 공간 속에서 금자는 자신뿐만 아니라 죽음 앞에 두려워하는 일본 군인에게 측은한 위로를 던진다. 일본이 이겨야 살고, 살아야 나갈 수 있는 복잡 미묘한 감정,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매일 흐르는 강물에 새기면서 하루하루를 버텨온 위안부들의 기억을 보듬으며 작가는 공동체의 집단적 기억이 돼야 한다고 조심스레 외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