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회계 정정 기회" 라지만…
국내 시장규모 세계의 2%뿐
과징금 한도 확대도 부담
바이오업계 "무더기 퇴출 조장"
수조원 들어가는 신약 개발
엄격한 회계 기준 적용으로
투자유치 위축 불가피
▶본지 8월16일자 A10면 참조 ◆금감원 “자진 정정 기회 준 것”
금감원은 감리 제재를 하기 전에 제약·바이오 기업들에 기회를 줬다는 입장이다. 기업들이 회계처리를 잘못한 것을 인식하고 자발적으로 정정하면 제재 수위가 낮아진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후 제재보다 사전 예방 쪽으로 감독 방향이 바뀌고 있는 만큼 이번에 제약·바이오 업체들이 자진해서 정정할 수 있도록 의사소통을 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구두지침에 바이오산업의 특성도 반영했다고 했다. 임상 3상 이전 단계에서 기술이전(라이선스아웃) 계약을 맺은 경우 연구개발비를 자산화하는 것을 허용하는 등 기업들의 상황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는 11월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개정 등을 통한 ‘회계개혁안’ 시행 이후 부정회계의 제재가 대폭 강화되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회계개혁안에 따르면 분식회계와 부실감사에 대한 과징금 부과 한도가 폐지되고, 현행 5~7년인 징역 기간은 최대 10년으로 늘어난다. 과징금 부과와 손해배상 시효도 현행 각각 5년과 3년에서 최대 8년으로 연장된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2018년 이후 회계부정에 대해선 과징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며 “기업들이 미리 재무제표를 정정해 위험을 털고 갈 수 있도록 금감원이 지도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업계 “산업 현실 모르는 처사”
하지만 제약·바이오업계는 국내 산업발전 속도를 감안할 때 이런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회계 투명성 제고도 절실하지만 국내 산업 환경을 고려한 잣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의약품 시장 규모는 연간 19조원 수준으로 세계 시장의 2%에 불과하다. 반면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의 비중은 50%에 이른다. 게다가 초대형 제약사와 바이오벤처 등 산업 생태계가 잘 갖춰진 데다 금융·투자 환경도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개발 중인 신약후보물질(파이프라인) 수는 미국이 1만1000개가 넘는 반면 한국은 900여 개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는 “신약 개발에 10년이 넘게 걸리고 수조원이 필요한데 회계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해지면 대다수 바이오벤처가 적자 늪에 빠져 외부 투자 유치를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라며 “코스닥 상장사들도 4년 연속 적자 룰에 걸려 무더기 퇴출 위기를 겪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실제 주요 바이오 기업의 재무 지표가 나빠졌다.
메디포스트는 금감원 지침에 따라 작년과 1분기 감사보고서를 정정함에 따라 자기자본이 급감하고, 영업손실은 대폭 커졌다. 차바이오텍은 작년 영업흑자를 적자로 바꿔 공시했다.
회계당국의 이 같은 조치 이면에는 “바이오 기업을 범법자로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투자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회계처리 기준이 강화돼 바이오 기업의 적자가 늘어나면 자본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며 “증시에 상장하더라도 상장폐지 가능성 등 고려할 게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테마감리 제재 수위도 촉각
금감원은 지난 4월부터 10여 개 제약·바이오 업체를 대상으로 테마감리를 벌여왔다. 조만간 감리 결과를 내놓을 방침이다. 금감원은 이번 감리에서 상당수 기업의 회계처리 위반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조치안을 해당 기업에 통보한 뒤 이르면 다음달 말 증권선물위원회에 제재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금감원의 제재 수위에 증시는 물론 바이오산업 전반이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병훈/하수정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