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개월에 한 번 하는 상장사 실적 발표를 6개월에 한 번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요청했다. 분기별 연간 4회 발표를 반기별 연간 2회 발표로 줄이는 방안을 고려해보자는 것이다. 실적 발표 횟수 축소는 지난 7일 트럼프 대통령과 만찬을 한 기업 경영인들이 “분기별 실적 발표에 따른 상장사 부담이 너무 크고 단기 성과주의가 만연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며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트위터를 통해 “세계 최고 기업의 리더들과 대화한 자리에서 6개월 단위 실적 발표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제안이 나왔다”며 “유연성이 더 커지고 비용도 절약할 수 있어 SEC에 검토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실적을 너무 자주 공개하게 한 탓에 상장기업 경영진이 단기 목표에만 매달린다는 불만은 그동안에도 제기됐다. 하지만 투자자 보호를 위해 실적 등 기업정보 공개를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반대론도 상당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같은 논란과 관련해 “헤지펀드 주주 등 무책임한 금융 기술자들이 기업 경영을 좌지우지하면서 경영인의 부담이 커진 것은 사실”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1930년대부터 증권가에서 상장사에 분기 실적보고를 요구하는 관행이 있었고 SEC가 1970년 이를 공식화해 규제하기 시작했다. 유럽연합(EU)은 기업들이 6개월에 한 번만 실적을 공개하고 나머지 분기는 매출 등 간략한 사항만 발표하고 있다. 다만 글로벌 기업은 대부분 미국 기준에 맞춰 분기마다 한 번씩 실적을 발표한다.

미국 기업들은 실적 발표 횟수를 줄이는 데 찬성하는 분위기다. 미 상공회의소 관계자는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1930년대 공시 제도가 기업에 부담만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이를 제안한 인드라 누이 펩시 최고경영자(CEO)는 과거 수차례 단기 성과주의의 부당함을 지적했다.

상장사들은 SEC의 규제가 완화되면 매 분기 실적 전망(실적 가이던스)을 내도록 강요하는 관행도 없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업들이 영업 상황과 관계없이 미리 내놓은 숫자에 실적을 끼워 맞춰야 하는 등 부작용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과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회장 등이 이끄는 200여 명의 미국 CEO 그룹은 지난 6월 “단기 실적주의가 미국 경제에 해를 끼치고, 지난 20년간 미국 상장사 숫자가 줄어든 데도 영향을 미쳤다”는 성명을 내놓기도 했다. 최근 일론 머스크가 주주들의 압박으로 테슬라 상장 폐지를 추진하는 등 기업들이 상장을 회피하는 부작용도 함께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즉각적인 규제 완화로 이어질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SEC는 독립위원회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 기관이 아니다. 여전히 일부 투자자는 기업들이 더 많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분기 실적 공시는 글로벌 표준으로 굳어졌고, 시스템을 바꾸는 게 주주에게는 직접적인 혜택을 주지 않는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과 관련, 금융당국이 상장기업과 투자자들이 장기적인 기업 발전에 집중하도록 촉진하는 방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문서를 다음주께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제이 클레이턴 SEC 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위원회 차원에서 실적 발표 횟수를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