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의 뿌리이자 일자리의 87%를 떠맡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불황의 한가운데서 최저임금 인상, 근무시간 단축이라는 대형 ‘정책 악재’에 휩쓸리며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주요 지방산업단지들의 쇠락에서는 ‘중소기업 생태계’의 붕괴 조짐이 감지된다. 울산, 포항, 창원, 구미, 광양 등 영·호남 5대 산업단지 내 중소기업(50인 미만) 가동률은 2016년 말 81%에서 최근 50%대로 급락했다. 자동차 관련사들이 밀집해 ‘제조업의 심장’으로도 불리는 울산은 최근 4년 새 인구가 2만여 명이나 줄었다. 창원과 구미에서도 부도를 맞아 팔리기만을 기다리는 공장이 넘친다는 소식이다. 풀뿌리 기업들의 부진은 인근 지역 영세 자영업의 폐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의 지난해 국내투자가 21조원으로 2년 전보다 57% 급감한 점도 생태계 붕괴의 방증이다. 줄어든 투자는 베트남 중국 등 해외로 향했다. 기업인을 대하는 싸늘한 사회적 시선도 위기를 부채질하는 요인일 것이다. ‘갑질과 착취의 주범’쯤으로 대하는 분위기에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중소기업가들의 하소연이 쏟아지고 있다. 최저임금과 주52시간 근로제의 압박이 심화되는 내년부터 ‘진짜 탈출’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배경이다.

‘고용 쇼크’를 넘어 ‘고용 지옥’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정부의 인식은 한가해 보인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그제 “소득주도 성장·혁신 성장·공정경제 정책이 곧 효과를 낼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소득주도 성장은 한계를 드러냈고, 혁신 성장은 첩첩 규제에 가로막혀 있는 현실이 안 보이는 모양이다. 공정경제 정책 역시 시장을 옥죄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지 않은가.

반(反)시장 정책을 밀어붙이고, 지지층만 챙기는 정치적 접근으로는 달라질 게 없다. 보조금을 퍼주는 손쉬운 정책은 ‘좀비기업’을 양산할 뿐이다. 정부가 전능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시장 중심 ‘개방형 혁신체제’ 설계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자면 기업 사정에 맞춘 탄력근로제 도입을 허용하는 등의 유연한 발상이 필수적이다. 대기업들과의 공생하에서 중소기업 생태계가 완성된다는 점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