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12월 발간 예정인 ‘2018 국방백서’에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4·27 판문점 선언’에서 강조한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후속 조치라는 주장과 북한이 ‘비핵화의 문’에 들어서지도 않은 상태에서 불필요한 안보 논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비판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국방백서 '북한은 우리의 敵' 삭제 추진… 한국당 "軍 무력화시켜"
◆논란 증폭되는 북한 주적 개념

국방부는 22일 “국방백서에 나와 있는 북한군 표현에 대해 검토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적’으로 표기된 문구를 삭제하는 대신 ‘군사적 위협’ 등의 표현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6 국방백서’에는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표기돼 있다. 이 문구는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한 2010년 말 발간된 ‘2010 국방백서’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 같은 검토 작업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이르면 올해 안에 종전선언이 이뤄질 수 있는 데다 4·27 판문점 선언의 합의 내용을 이행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후속 조치”라고 말했다. 남북한 정상은 지난 4월 판문점에서 열린 1차 정상회담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자유한국당은 즉각 반발했다.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기자회견을 열고 “국군을 정치화하고 무력화하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과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국군을 정치적 포퓰리즘의 수단으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인 이주영 한국당 의원(국회 부의장)은 “정부가 감시초소(GP) 시범 철수에 이어 안보의식의 기초인 국방백서마저 바꾸려 한다”며 “북한은 우리의 안보 의식이 흔들릴 때 가장 공세적으로 나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 상호주의 원칙 지켜야

국방백서는 대내외에 우리 정부의 국방정책 기본 틀을 밝히는 책자로 격년제(2000년 이후)로 발행된다. 국회 등 국내 기관은 물론 외국의 군과 대사관 등에 영문판이 뿌려진다. 군 조직에서 사용하는 각종 개념과 용어의 기초이기도 하다.

남북관계 변화에 따라 국방백서상 북한에 대한 표현은 여러 차례 변했다. ‘북한군은 주적’이라는 표현은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국방백서에 처음 등장했다. 1994년 북측의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던 때였다. 주적 표현이 사라진 것은 노무현 정부 때 발간된 ‘2004 국방백서’에서부터다. 노무현 정부는 북한을 ‘심각한 위협’, ‘직접적인 위협’ 등으로 표현했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2010년 천안함 폭침 등의 북측 도발이 도화선이 돼 ‘북한 정권과 북한은 우리의 적’이라는 문구가 국방백서에 다시 등장했다.

올해 발간될 국방백서 수정에 대해 전문가들도 찬반 의견이 뚜렷이 갈리고 있다. 북측이 국방백서상의 ‘주적’ 개념을 문제 삼을 수 있다는 게 찬성론자들의 주된 의견이다. 반대론자들은 한·미 동맹 차원에서도 우리 정부가 미국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북한의 핵과 장거리 미사일을 자국에 대한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정한범 국방대 안보정책학과 교수는 “평양 정상회담을 준비 중인 정부 입장에선 협상의 진전을 위해서라도 적이라는 표현을 대체하고 싶을 것”이라면서도 “북측의 남한에 대한 공격적인 표현을 고치도록 하는 상호주의를 관철하는 게 내부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