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주면 절차 진행"… 양승태 사법부의 꼼꼼한 '재판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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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헌, 서류제출 기간까지 계산하며 외교부에 재판일정 제시
징용피해자 승소판결 뒤집기 '최종 목표'…계획대로 실제 재판 진행 양승태 사법부 시절 대법원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기도 전에 법원행정처와 외교부가 이미 전원합의체 심리를 염두에 두고 세부 절차를 협의한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다.
대법원은 이 소송의 절차가 담당 재판부의 자체 검토와 판단에 따라 진행돼 왔다고 주장해 왔다.
이 소송을 둘러싸고 청와대까지 개입한 사실이 확인되는 등 검찰 수사로 재판거래 정황이 속속 드러났지만, 대법원의 이런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법원행정처와 외교부가 재판의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소송절차의 세밀한 부분까지 계획한 단서가 드러나면서 대법원 해명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23일 사정당국과 외교부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봉수 부장검사)는 2016년 9월29일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과 이민걸 기획조정실장이 심의관 한 명을 데리고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를 찾아가 당국자들과 징용소송 재상고심 절차를 논의한 기록을 확보했다.
임 전 차장 등은 회의에서 ▲ 피고인 전범기업의 입장을 반영한 외교부 의견서를 제출받고 ▲ 이를 빌미로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넘긴 다음 ▲ 최종적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던 2012년 대법 판결을 뒤집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임 전 차장은 "외교부로부터 의견제출 절차 개시 시그널을 받으면 대법원은 피고(전범기업) 측 변호인으로부터 정부 의견 요청서를 접수받아 이를 외교부에 그대로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절차는 1주일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후 외교부에서 공문접수 3∼4주 후 의견서를 제출해주면 이를 기초로 법원 내부절차를 개시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원 내부절차는 전원합의체 회부, 공개변론 여부를 포함한 내부 토의, 판결 순으로 진행한다"고 말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임 전 차장은 "4년 전 내려진 판결을 바로 뒤집기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현임 대법원장 임기 중 결론이 내려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당시 소송 상황을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외교부가 의견서를 늦어도 11월 초까지 보내주면 가급적 이를 기초로 최대한 절차를 진행하고자 한다"고 안내했다.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기존 판결을 뒤집는 게 '내부절차'의 최종 목표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 회의는 청와대·외교부·법원행정처가 2013년부터 논의한 '재판거래'의 마지막 단계를 완성하는 구체적 실행계획에 해당하는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실제 재판은 임 전 차장 등 법원행정처 간부들의 구상대로 진행됐다.
대법원 사건기록을 보면 전범기업 측 대리인은 회의 1주일 뒤인 10월6일 대법원에 '의견서 제출 촉구서'를 낸다.
대법원으로부터 이 서류를 받은 외교부는 같은 해 11월29일 재판부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의견서에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기존 판결의 부정적 파급효과와 함께 "양국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담겨 있다.
다만 외교부 의견서 제출 이후 단계인 '전원합의체 회부'와 '판결 번복'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이는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가 발생하면서 청와대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탓에 대법원과 외교부가 계획을 완수할 필요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외교부 의견서 제출 열흘 뒤인 12월9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됐다. 대법원은 그동안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이 심리불속행 기간을 넘겨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기까지 재판부의 판단 이외에는 어떠한 외부 영향도 없었다고 말해왔다.
대법원은 지난달 말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면서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소부(小部)에서 심리를 하다가, 2016년 11월부터 전원합의체 판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보고안건으로 대법원장 및 다른 대법관들의 의견을 듣는 등의 방법으로 전원합의체에서 논의를 했다"며 "그 과정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어 결국 전원합의체 판결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전원합의사건으로 지정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이날 전원합의체 회의를 열고 징용소송 심리를 본격 진행한다.
그러나 의견서 제출 절차가 진행되기 전 이미 법원행정처 간부들이 '판결 뒤집기'를 목표로 재판일정을 짰고, 실제 소송 역시 그대로 진행된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재판거래 의혹은 더욱 짙어지게 됐다.
한편 법원은 임 전 차장과 외교부가 구체적인 재판절차까지 논의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법관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달 초 전·현직 판사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이들은 법원행정처가 징용소송을 둘러싼 재판거래의 '밑그림'을 그린 2013년 9월 문건 등을 토대로 사건 연루 의혹이 불거진 법관들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문건 내용이 부적절하나 대한민국 대법관이 일개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 따라 재판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 검찰의 압수수색을 불허했다.
검찰은 유일하게 외교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임 전 차장과 외교부의 2016년 9월 회의 내용을 기록한 문건을 확보했다.
검찰은 이를 재판거래 혐의의 더욱 뚜렷한 물증으로 보고 소명자료로 첨부해 판사들 압수수색 영장을 다시 청구했으나 이번엔 "상관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따른 것일 뿐"이라는 사유로 기각됐다.
/연합뉴스
징용피해자 승소판결 뒤집기 '최종 목표'…계획대로 실제 재판 진행 양승태 사법부 시절 대법원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기도 전에 법원행정처와 외교부가 이미 전원합의체 심리를 염두에 두고 세부 절차를 협의한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다.
대법원은 이 소송의 절차가 담당 재판부의 자체 검토와 판단에 따라 진행돼 왔다고 주장해 왔다.
이 소송을 둘러싸고 청와대까지 개입한 사실이 확인되는 등 검찰 수사로 재판거래 정황이 속속 드러났지만, 대법원의 이런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법원행정처와 외교부가 재판의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소송절차의 세밀한 부분까지 계획한 단서가 드러나면서 대법원 해명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23일 사정당국과 외교부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봉수 부장검사)는 2016년 9월29일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과 이민걸 기획조정실장이 심의관 한 명을 데리고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를 찾아가 당국자들과 징용소송 재상고심 절차를 논의한 기록을 확보했다.
임 전 차장 등은 회의에서 ▲ 피고인 전범기업의 입장을 반영한 외교부 의견서를 제출받고 ▲ 이를 빌미로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넘긴 다음 ▲ 최종적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던 2012년 대법 판결을 뒤집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임 전 차장은 "외교부로부터 의견제출 절차 개시 시그널을 받으면 대법원은 피고(전범기업) 측 변호인으로부터 정부 의견 요청서를 접수받아 이를 외교부에 그대로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절차는 1주일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후 외교부에서 공문접수 3∼4주 후 의견서를 제출해주면 이를 기초로 법원 내부절차를 개시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원 내부절차는 전원합의체 회부, 공개변론 여부를 포함한 내부 토의, 판결 순으로 진행한다"고 말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임 전 차장은 "4년 전 내려진 판결을 바로 뒤집기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현임 대법원장 임기 중 결론이 내려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당시 소송 상황을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외교부가 의견서를 늦어도 11월 초까지 보내주면 가급적 이를 기초로 최대한 절차를 진행하고자 한다"고 안내했다.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기존 판결을 뒤집는 게 '내부절차'의 최종 목표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 회의는 청와대·외교부·법원행정처가 2013년부터 논의한 '재판거래'의 마지막 단계를 완성하는 구체적 실행계획에 해당하는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실제 재판은 임 전 차장 등 법원행정처 간부들의 구상대로 진행됐다.
대법원 사건기록을 보면 전범기업 측 대리인은 회의 1주일 뒤인 10월6일 대법원에 '의견서 제출 촉구서'를 낸다.
대법원으로부터 이 서류를 받은 외교부는 같은 해 11월29일 재판부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의견서에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기존 판결의 부정적 파급효과와 함께 "양국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담겨 있다.
다만 외교부 의견서 제출 이후 단계인 '전원합의체 회부'와 '판결 번복'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이는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가 발생하면서 청와대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탓에 대법원과 외교부가 계획을 완수할 필요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외교부 의견서 제출 열흘 뒤인 12월9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됐다. 대법원은 그동안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이 심리불속행 기간을 넘겨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기까지 재판부의 판단 이외에는 어떠한 외부 영향도 없었다고 말해왔다.
대법원은 지난달 말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면서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소부(小部)에서 심리를 하다가, 2016년 11월부터 전원합의체 판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보고안건으로 대법원장 및 다른 대법관들의 의견을 듣는 등의 방법으로 전원합의체에서 논의를 했다"며 "그 과정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어 결국 전원합의체 판결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전원합의사건으로 지정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이날 전원합의체 회의를 열고 징용소송 심리를 본격 진행한다.
그러나 의견서 제출 절차가 진행되기 전 이미 법원행정처 간부들이 '판결 뒤집기'를 목표로 재판일정을 짰고, 실제 소송 역시 그대로 진행된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재판거래 의혹은 더욱 짙어지게 됐다.
한편 법원은 임 전 차장과 외교부가 구체적인 재판절차까지 논의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법관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달 초 전·현직 판사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이들은 법원행정처가 징용소송을 둘러싼 재판거래의 '밑그림'을 그린 2013년 9월 문건 등을 토대로 사건 연루 의혹이 불거진 법관들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문건 내용이 부적절하나 대한민국 대법관이 일개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 따라 재판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 검찰의 압수수색을 불허했다.
검찰은 유일하게 외교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임 전 차장과 외교부의 2016년 9월 회의 내용을 기록한 문건을 확보했다.
검찰은 이를 재판거래 혐의의 더욱 뚜렷한 물증으로 보고 소명자료로 첨부해 판사들 압수수색 영장을 다시 청구했으나 이번엔 "상관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따른 것일 뿐"이라는 사유로 기각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