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놈앤컴퍼니 공동 창업자인 배지수 대표(오른쪽)와 박한수 연구소장이 경기 성남 판교테크노밸리에 있는 본사 사무실에서 나란히 포즈를 취했다. 배경인 CI 조형물에는 회사 직원 이름과 프로젝트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배 대표는 “직원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박영태 기자
지놈앤컴퍼니 공동 창업자인 배지수 대표(오른쪽)와 박한수 연구소장이 경기 성남 판교테크노밸리에 있는 본사 사무실에서 나란히 포즈를 취했다. 배경인 CI 조형물에는 회사 직원 이름과 프로젝트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배 대표는 “직원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박영태 기자
“사이언스를 주도하고 사이언스로 존경받는 회사를 일구고 싶다.”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바이오기업 지놈앤컴퍼니의 배지수 대표(47)가 지향하는 길이다. 의사 출신 최고경영자(CEO)로 제대로 된 바이오기업을 일궈 병원에만 갇혀 있는 의사 후배들에게 롤 모델이 되고 싶어서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작은 바이오벤처기업으로 출발했지만 혁신 신약을 잇따라 성공시켜 창업 30년 만에 글로벌 9위 제약사로 도약한 길리어드사이언스 같은 회사로 키우는 게 목표다. 그는 “웬만한 대학교나 연구소보다 더 탄탄한 사이언스 능력을 갖추고 싶다”고 했다.

지놈앤컴퍼니의 박한수 연구소장이 3년 전 배지수 대표에게 마이크로바이옴의 가능성을 설명하기 위해 촘촘하게 적은 메모. 박 소장의 설명을 듣고 배 대표는 지놈앤컴퍼니 공동 창업을 결심했다.
지놈앤컴퍼니의 박한수 연구소장이 3년 전 배지수 대표에게 마이크로바이옴의 가능성을 설명하기 위해 촘촘하게 적은 메모. 박 소장의 설명을 듣고 배 대표는 지놈앤컴퍼니 공동 창업을 결심했다.
의사 되는 게 탐탁잖았던 의대생

배 대표는 정신과 전문의다. 울산 학성고를 나와 서울대 의대에 들어간 수재였다. 하지만 순탄치 않았다. 레지던트 시절 불어닥친 닷컴열풍이 배 대표를 흔들어놨다. 그는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의학 공부만 하는 게 맞나 하는 조바심이 일었다”며 “남들처럼 창업 전선에 뛰어들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고 했다. 그러다 결국 벤처 창업에 손을 댔다. 온라인 사교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세우는 데 일조했다.

전문의 자격을 딴 뒤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의학 공부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듀크대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은 뒤 외국계 컨설팅회사인 베인앤컴퍼니에 입사했다. 소비재 기업과 금융회사 등에 영업과 마케팅 전략을 컨설팅했다. 그는 “막상 창업하려니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늘 사업을 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렸다”고 했다.

배 대표는 고교 시절까지는 여느 학생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판검사, 교수, 의사를 꿈꾸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배 대표 스스로가 사업가적 기질을 발견한 것은 대학 시절 자원봉사를 하면서였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체불을 해결해주는 일을 도왔는데 이 과정에서 코핑스킬(문제해결능력)과 영업 자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시대 연다… 몸속 미생물로 항암제 개발"
호프집에서 창업 꿈 영글다

경기 성남 판교테크노밸리에 있는 지놈앤컴퍼니는 서울대 의대 동기인 배 대표와 박한수 연구소장이 2015년 공동 창업한 회사다. 기초연구에 관심이 많던 박 소장은 임상의의 길을 걷지 않고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미국 하버드대에서 5년간 박사후과정을 밟았다. 그 사이 유명 국제학술지에 20여 편의 논문을 실었을 정도로 연구 성과를 올렸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2015년 초였다. 배 대표는 서울의 한 호프집에서 박 소장과 만났다. 사업계획서 작성을 도와달라는 박 소장의 부탁을 받고서였다. 처음엔 컨설턴트를 지낸 경험을 살려 친구를 돕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박 소장이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려가며 마이크로바이옴 사업 구상을 장황하게 설명해줬어요. 그때 문득 ‘이 사업은 같이해야겠다’는 확신이 섰어요. 미국에서 마이크로바이옴이 막 뜨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는데 한국에서 시작해도 승산이 있겠다는 판단이 들더군요.”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시대 연다… 몸속 미생물로 항암제 개발"
“마이크로바이옴 분야 1인자 되겠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인간의 몸속에서 공존하고 있는 미생물의 유전정보 전체를 일컫는다. ‘제2의 게놈’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장내 미생물이 생체대사 조절이나 소화력, 각종 질병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면역항암제와 비만 등의 치료제 개발 시도가 최근 활발해지고 있다. 질환 진단에도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아이이노베이션 천랩 비피도 등이 이 분야에 도전장을 냈다. 배 대표는 “장내 미생물은 단순히 우리 몸에 기생하는 세균이 아니라 우리 몸과 교류하며 산다”며 “유전체 분석 기술로 인간에게 유익한 세균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지놈앤컴퍼니는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면역항암제를 개발 중이다. 배 대표는 “올해 말이나 내년 1분기 중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임상 허가 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임상 1상은 환자 20~50명을 대상으로 할 계획이다. 적응증은 폐암 흑색종 대장암 등이 유력하다. 임상 1상은 내년 말 완료해 2020년 임상 2상에 들어가는 게 목표다. 그는 “기존 면역항암제와 병용요법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단독요법 치료제로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부작용이 거의 없는 게 최대 장점이다. 배 대표는 “키트루다 등 기존 면역항암제만 해도 인체에 없던 항체를 쓰기 때문에 암세포가 오히려 커지거나 면역폭풍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사람 몸에 살던 세균인 마이크로바이옴은 부작용이 적어 의사들이 부담 없이 처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항암제는 에벨로 세레스 등 해외 바이오벤처들이 개발 중이다. 국내에서는 지놈앤컴퍼니가 유일하다. 배 대표는 “마이크로바이옴의 효능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기전 연구가 성패를 가를 것”이라며 “이것만큼은 경쟁사들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지놈앤컴퍼니는 조만간 국제학술지 등을 통해 기전과 관련한 연구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항비만 유산균·아토피 치료 화장품 개발”

지놈앤컴퍼니는 비만·당뇨 개선에 좋은 건강기능식품, 여드름과 아토피를 완화해주는 화장품도 개발 중이다. 과체중을 조절해주는 유산균(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은 서울대병원과 임상을 하고 있다. 배 대표는 “현재 36명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임상을 200명까지 확대할 것”이라며 “연말께 임상을 마치고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건강기능식품 개별인증을 거친 뒤 내년에 출시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마이크로바이옴이 비만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방증해주는 사례는 적지 않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앓는 엄마가 뚱뚱하지만 건강한 딸의 대변으로 대변이식술을 받은 뒤 살이 찌는 부작용을 보인 임상 연구사례 등이 그것이다. 소아비만은 항생제를 많이 쓰면 나타나는데 이는 항생제를 써서 장내 세균이 파괴됐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배 대표는 “물만 마셔도 살찐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마이크로바이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드름과 아토피에 좋은 화장품도 조만간 임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그는 “사람 피부에도 세균이 사는데 항염증 효과를 내는 세균을 찾아냈다”며 “국내 유명 화장품회사와 손잡고 기능성 화장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마이크로바이옴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는 게 배 대표의 설명이다. 비뇨기 소화기 호흡기 피부 콧속 등 외부에 노출되거나 공기 등으로 접촉이 이뤄지는 인체 부위에는 세균이 살고 있다. 이는 이들 장기 질환에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배 대표는 프로바이오틱스의 시장 판도가 수년 내에 급변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지금은 유산균 수가 많다는 것이 제품 경쟁력으로 인식되지만 비만 아토피 등 특정 질환을 개선해주는 효과 여부가 경쟁력을 가르는 척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년 뒤 코스닥 상장”

지놈앤컴퍼니는 2020년께 코스닥시장 상장이 목표다. 아직 매출이 전무하지만 최근 창업투자회사들로부터 5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올 들어서만 15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배 대표는 “조금씩 마이크로바이옴의 가능성이 조명되고 있다”며 “다국적 제약사 등 서너 곳과 기술수출 협상을 진행 중이어서 조만간 성과가 가시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놈앤컴퍼니에는 독특한 조직이 있다. ‘비즈니스 전략팀’이다. 전체 직원 30명 가운데 연구직 23명을 뺀 7명이 비즈니스 전략팀 소속이다. 이 팀의 역할은 비즈니스 전략과 로드맵을 짜는 일이다. 배 대표는 “자금이나 노하우가 부족한 벤처기업이 초기 물질 개발을 했더라도 임상 2상, 임상 3상 등을 하는 데는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어느 시기에 어떤 파트너와 협력할지 전략을 짜는 것은 개발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회사에는 사장실이나 임원실이 따로 없다. 모든 직원이 개방된 공간에서 같이 일한다. 배 대표는 “과거 병원 운영 당시 직원들이 원장실을 찾는 것을 어렵게 여겨 제때 알리지 않은 바람에 일이 꼬이고 커진 적이 많았다”며 “자유로운 소통을 위해 모든 직원이 열린 사무공간에서 일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벤처기업답지 않게 야근을 장려하지 않는 것도 배 대표의 경험에서 나온 경영 원칙이다. 그는 “컨설팅회사 근무 시절 새벽 퇴근을 밥 먹듯 하다 보니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며 “창업 초창기부터 연구부문 직원들도 야근하지 않고 출퇴근 시간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도록 했다”고 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