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급 대화 채널 한계 노출…상대방 마지노선 떠본 탐색적 대화 그쳐
美, 2천억달러 中제품에 추가 관세부과 등 '파상공세' 가능성 커져
'무조건 항복' vs '양보는 가능'… 미중 무역협상 예고된 결렬
무역전쟁을 벌이던 미국과 중국이 2개월 만에 협상장에서 다시 마주 앉았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애초 무역분쟁 해소방안을 놓고 미국과 중국의 견해차가 워낙 큰 상황에서 협상 대표의 격이 낮아 상대방의 카드를 엿보는 탐색적 수준 이상의 논의가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미중 무역전쟁 출구 찾기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이 중국에 '무조건 항복'에 가까운 요구안을 내놓은 반면 중국은 '성의 있는 양보' 이상의 굴욕적 요구에는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적으로 발발하고 나서 승기를 잡았다고 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에 전면적인 압력을 가해 이번에야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제대로 바로잡아보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미국은 연간 3천700억달러에 달하는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는 문제를 넘어서 ▲ 중국 기업의 미국 지식재산권 도용·남용 ▲ 중국 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투자 시 기술 이전 강요 ▲ '중국제조 2025' 등 차별적인 자국 기업 육성·지원 정책 ▲ 위안화 환율 등 다양한 현안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 6월 무역협상 과정에서 중국은 미국 농산품과 에너지 제품 수입을 확대해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는 양보안을 제시했으나 미국의 호응을 끌어내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무역전쟁 승패가 양국 지도자들의 정치적 명운에 직결된다는 점이 대화를 통한 무역협상에 더욱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에서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 고개를 든다.

미중 무역전쟁이 중국은 물론 미국의 경제성장률까지 끌어내리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지만 유례없는 미국의 호황이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며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내 '매파'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 국제사회에서는 이번 무역갈등이 통상차원 문제가 아니라 기존 세계 최강국 미국과 부상하는 강국인 중국 간의 헤게모니 다툼의 성격이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중국 정부의 산업지원 정책, 환율·금융 시스템 등에 변화를 유도해 중국의 추격 속도를 늦추려는 데 무역전쟁의 숨은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공교롭게도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웨스트버지나아주 중간선거 유세에서 자신이 대통령이 됨으로써 중국의 미국 추격 속도가 늦춰지게 됐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는 "우리는 중국이 아주 짧은 시일 내에 우리보다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며 "더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조야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6월 북미 정상회담 이후 사실상 중국을 적대국가로 상정한 대외정책을 펴나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집권 이후 중점을 둬온 북핵 문제 해결에 어느 정도 숨통이 트였다는 판단 아래 중국 억제에 자신의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미중 무역전쟁은 1인 독주체제를 구축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시험대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주택가격 급등, 개인 간 대출(P2P) 시장 부실화로 인한 경제적 혼란, '가짜 백신' 파동 등으로 중국인들의 불만이 커지는 가운데 무역전쟁으로 경제상황이 더욱 악화하면서 지도부의 정세 오판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져 가기 때문이다.

특히 시 주석 집권 이후 덩샤오핑(鄧小平) 시대 이후 고수해온 '도광양회'(韜光養晦·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 원칙을 던져버리고 미국을 제치고 초강대국으로 올라선다는 '중국몽'(中國夢)으로 대표되는 팽창적 대내정책을 펴나가면서 미국의 견제를 자초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다만 중국으로서는 미국과의 전면적인 대결 구도 속에서 받는 상처가 크다는 점에서 미국보다 고심이 클 수밖에 없다.

야오웨이췬(姚爲群) 상하이국제무역센터 전략연구원 원장은 "무역전쟁이 실제로 중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다"며 "만일 또 10% 이상 관세가 올라가게 된다면 기업들은 도저히 이익을 내기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간 '결사항전'을 대대적으로 선전해온 중국이 자국 산업 지원 정책 축소, 국내외 기업 차별적 규제 철폐, 위안화 평가 절상 등 미국의 각종 요구를 대폭 수용한다면 굴욕적인 양보라는 내부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도 중국 지도부의 운신 폭을 제약하고 있다.
'무조건 항복' vs '양보는 가능'… 미중 무역협상 예고된 결렬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차관급들이 대표로 나선 협상이 성과 없이 끝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기실, 미중 양측 모두 이번 대화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았으며 상대방이 어느 수준까지 요구할지, 어느 수준까지 양보할 수 있을지 마지노선을 알아보는 탐색전 성격이 짙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인 스팀슨센터의 쑨윈 동아시아 담당 연구원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앞서 류허 부총리가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상무부 차관이 그걸 할 수 있겠느냐"며 "중국이 트럼프 행정부의 마지노선이 어디인지를 테스트해보기 위해서 이번 대화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협상에서 중국 측이 미국 물품 수입확대 수준 이상의 카드를 꺼내 보이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향후 미국의 대중 공세가 누그러질 가능성은 한층 작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인용, 중국 대표단이 이번 회담에서 의미 있는 타협안을 제시할 조짐조차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중국과의 무역협상에서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미중 무역분쟁을 마무리하는 별도 시간표(time frame)도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따라서 중국 측이 진전된 양보안을 테이블에 올려놓지 않는 이상 트럼프 행정부는 앞서 예고한 대로 2천억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 추가로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등 계속 압박에 나설 가능성이 한층 커진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은 만일 미국이 2천억달러 규모의 자국 제품에 추가 관세를 물리면 이에 대응해 미국 제품 600억달러 어치에 보복관세를 물리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다만 미국 측의 강경한 입장을 재확인한 중국 정부가 내부적으로 어느 정도의 추가 양보안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어 일단 재개된 대화 동력을 살려 나갈지에 관심이 쏠린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더욱 속이 타는 쪽은 중국이라는 점에서 중국 측이 본격적인 대화재개에 더욱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중국 상무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무역 문제와 관련해 건설적이고 솔직한 교류를 했다.

쌍방은 다음 만남을 준비하고 접촉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언급, 더욱 적극적으로 향후 대화가 이어지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