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상봉] "아들이에요. 살아계실줄은 꿈에도"… 곳곳 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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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기씨, 북측 아버지 만나…평생 남편 기다리던 모친은 석달전 사망
이산가족 2차상봉단 일정시작…北언니 만난 南동생 "살아줘서 고마워" "맏아들이에요.
맏아들."
조정기(67) 씨는 한 번도 직접 얼굴을 본 적이 없는 북측 아버지 조덕용(88) 씨를 만나자마자 눈물을 왈칵 쏟았다.
2차 이산가족상봉행사 단체상봉이 열린 24일 오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는 그리운 가족을 만난 감격에 곳곳에서 오열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 조덕용 씨는 6·25 전쟁 때 홀로 북으로 갔고, 당시 어머니 뱃속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조정기 씨가 있었다.
한 번도 아버지 얼굴을 보지 못한 채 긴긴 세월을 참아낸 것이다.
조정기 씨는 "살아계실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조 씨의 어머니는 평생 남편을 그리워하다 조덕용 씨가 살아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7월 5일보다 불과 50여일 전인 5월 15일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조 씨는 어머니가 평생을 혼자 사시다 돌아가셨다며 "조금만 일찍 연락을 받았으면…"하고 안타까워했다.
눈물 닦으려 손수건을 사왔다는 조 씨는 "아버지. 그런데 괜찮아요.
보니까 괜찮아요.
어머니때문에 그렇지"라고 말하더니, "나한테 미안하다고 안 해요?"라며 어머니와 자신을 남겨두고 떠난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을 내비쳤다.
귀가 어두운 조덕용 씨는 들리지 않는지 말이 없었고, 조정기 씨도 아버지 손을 잡고 그냥 웃었다.
그는 "아버지한테 다 이야기하고 나니 다 풀렸다"면서 "살아계신 것만 해도 고맙다"고 말했다.
우기주(79) 씨는 휠체어를 탄 북측 언니 우기복(86) 씨와 만나자 "살아줘서 고마워"라며 눈물을 쏟았다.
경기도 양주에 살던 우기주 씨는 언니 우기복 씨가 전쟁 직후 교육을 받으러 간다고 친척을 따라나선 이후 더는 언니를 만나지 못했다가 이날 극적으로 상봉했다.
김정숙(81) 씨도 69년만에 만난 북측 언니 김정옥(85) 씨 손을 잡고 "언니가 가던 녹슨 철길 따라서 우리가 오늘 왔어. 나는 언니 얼굴도 모르잖아. 엄마 얼굴도 모르고. 내 이름을 어떻게 기억했어"라고 말하며 계속 울었다.
김정옥 씨는 1949년 청진으로 돈 벌러 간다고 떠난 이후 전쟁이 터지면서 강원도 양양에 살던 다른 가족들과 연락이 닿지 못했다.
황보원식(78) 씨는 북측의 이부누나 리근숙(84) 씨를 보자마자 한동안 끌어안고 울었다.
리근숙 씨는 전쟁통에 원산 방직공장에 돈 벌러 간다고 떠나면서 가족들과 헤어졌다.
당시 리 씨가 집에 남겨두고 간 자수를 남측 가족들은 챙겨왔다.
안경숙(89) 씨는 북측 조카 안세민(80) 씨가 들어오자 "세민아" 외치며 달려가 안세민 씨를 안았고 가족들 모두 서로를 껴안고 대성통곡했다.
권혁찬(81)·혁빈(81) 형제는 북측 형 권혁만(86) 씨가 들어오자 단번에 알아보고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순연(53) 씨도 상봉장에서 북측 삼촌을 만나자마자 "저예요.
순연이. 제가 순연이에요"라며 통곡했다.
최고령 강정옥(100) 할머니는 고향 제주도를 떠나 서울에 취직하러 갔다가 헤어진 북측 동생 강정화(85) 씨를 꼭 안아주고 쓰다듬으며 "정화야. 정화야. 안아줘야지. 아이고 고맙구나"라고 했고, 동생은 "믿어지지가 않는다"고 화답했다.
이날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린 금강산 지역에는 태풍의 영향으로 온종일 비가 내렸지만, 상봉행사에 크게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26일까지 계속되는 이산가족 2차상봉에는 남측 81가족 326명이 참여했다.
상봉단은 단체상봉에 이어 환영 만찬에서 가족들을 다시 만나고 이튿날 개별상봉과 객실중식, 단체상봉, 마지막 날 작별상봉 및 공동중식 순서로 총 12시간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연합뉴스
이산가족 2차상봉단 일정시작…北언니 만난 南동생 "살아줘서 고마워" "맏아들이에요.
맏아들."
조정기(67) 씨는 한 번도 직접 얼굴을 본 적이 없는 북측 아버지 조덕용(88) 씨를 만나자마자 눈물을 왈칵 쏟았다.
2차 이산가족상봉행사 단체상봉이 열린 24일 오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는 그리운 가족을 만난 감격에 곳곳에서 오열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 조덕용 씨는 6·25 전쟁 때 홀로 북으로 갔고, 당시 어머니 뱃속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조정기 씨가 있었다.
한 번도 아버지 얼굴을 보지 못한 채 긴긴 세월을 참아낸 것이다.
조정기 씨는 "살아계실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조 씨의 어머니는 평생 남편을 그리워하다 조덕용 씨가 살아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7월 5일보다 불과 50여일 전인 5월 15일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조 씨는 어머니가 평생을 혼자 사시다 돌아가셨다며 "조금만 일찍 연락을 받았으면…"하고 안타까워했다.
눈물 닦으려 손수건을 사왔다는 조 씨는 "아버지. 그런데 괜찮아요.
보니까 괜찮아요.
어머니때문에 그렇지"라고 말하더니, "나한테 미안하다고 안 해요?"라며 어머니와 자신을 남겨두고 떠난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을 내비쳤다.
귀가 어두운 조덕용 씨는 들리지 않는지 말이 없었고, 조정기 씨도 아버지 손을 잡고 그냥 웃었다.
그는 "아버지한테 다 이야기하고 나니 다 풀렸다"면서 "살아계신 것만 해도 고맙다"고 말했다.
우기주(79) 씨는 휠체어를 탄 북측 언니 우기복(86) 씨와 만나자 "살아줘서 고마워"라며 눈물을 쏟았다.
경기도 양주에 살던 우기주 씨는 언니 우기복 씨가 전쟁 직후 교육을 받으러 간다고 친척을 따라나선 이후 더는 언니를 만나지 못했다가 이날 극적으로 상봉했다.
김정숙(81) 씨도 69년만에 만난 북측 언니 김정옥(85) 씨 손을 잡고 "언니가 가던 녹슨 철길 따라서 우리가 오늘 왔어. 나는 언니 얼굴도 모르잖아. 엄마 얼굴도 모르고. 내 이름을 어떻게 기억했어"라고 말하며 계속 울었다.
김정옥 씨는 1949년 청진으로 돈 벌러 간다고 떠난 이후 전쟁이 터지면서 강원도 양양에 살던 다른 가족들과 연락이 닿지 못했다.
황보원식(78) 씨는 북측의 이부누나 리근숙(84) 씨를 보자마자 한동안 끌어안고 울었다.
리근숙 씨는 전쟁통에 원산 방직공장에 돈 벌러 간다고 떠나면서 가족들과 헤어졌다.
당시 리 씨가 집에 남겨두고 간 자수를 남측 가족들은 챙겨왔다.
안경숙(89) 씨는 북측 조카 안세민(80) 씨가 들어오자 "세민아" 외치며 달려가 안세민 씨를 안았고 가족들 모두 서로를 껴안고 대성통곡했다.
권혁찬(81)·혁빈(81) 형제는 북측 형 권혁만(86) 씨가 들어오자 단번에 알아보고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순연(53) 씨도 상봉장에서 북측 삼촌을 만나자마자 "저예요.
순연이. 제가 순연이에요"라며 통곡했다.
최고령 강정옥(100) 할머니는 고향 제주도를 떠나 서울에 취직하러 갔다가 헤어진 북측 동생 강정화(85) 씨를 꼭 안아주고 쓰다듬으며 "정화야. 정화야. 안아줘야지. 아이고 고맙구나"라고 했고, 동생은 "믿어지지가 않는다"고 화답했다.
이날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린 금강산 지역에는 태풍의 영향으로 온종일 비가 내렸지만, 상봉행사에 크게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26일까지 계속되는 이산가족 2차상봉에는 남측 81가족 326명이 참여했다.
상봉단은 단체상봉에 이어 환영 만찬에서 가족들을 다시 만나고 이튿날 개별상봉과 객실중식, 단체상봉, 마지막 날 작별상봉 및 공동중식 순서로 총 12시간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