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되고 있다'던 트럼프 "비핵화 진전 부진" 첫 언급하며 돌연 취소
폼페이오 방북·무역전쟁 해결 연계, 中에 또 경고장 …G2 무역갈등 불똥
트럼프식 '벼랑 끝 전술' 충격요법…2차 북미정상회담 기대감은 여전히 피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4차 방북길에 오르려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발걸음을 급히 잡아 세웠다.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충분한 진전이 없다는 점을 방북 취소 배경으로 꼽으며 북한을 압박하는 한편으로 또다시 '중국 배후론'을 제기,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에 노골적인 경고장을 날리며 무역전쟁과 방북 문제를 연계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내주 방북'을 공식화하고 스티븐 비건 포드자동차 부회장을 대북정책 특별대표에 지명한지 하루만의 180도 급변인 셈이다.

이날 '폭탄선언'은 2개월여 만에 열린 이틀간의 미·중간 무역협상이 이렇다 할 진전 없이 종료된 다음 날 나온 것이기도 하다.

미·중 무역전쟁의 불똥이 북미 비핵화 협상에도 튄 것으로 풀이된다.

폼페이오 장관의 이번 4차 평양행 계획은 지난달 6∼7일 3차 방북 이후 교착상태를 보여온 북미 협상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돌파구로 크게 주목받았다.

따라서 갑작스러운 방북 무산으로 인해 비핵화 협상과 종전선언 등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논의가 다시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하루 사이 냉·온탕을 오가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외교적 롤러코스터'로 한반도 정세가 출렁이며 요동치고 있는 상황이다.

무역문제 등을 둘러싼 주요 2개국(G2) 미·중간 주도권 다툼이 비핵화 협상의 변수로 작용하면서 남북미중 4자 간 얽히고설킨 함수관계 속에 한반도 비핵화 방정식도 더욱 복잡해지는 모양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폼페이오 장관에게 이번에는 방북하지 말라고 했다며 방북 취소를 발표했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관련해 충분한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과 "유엔 안보리의 제재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음에도 불구, 대중 무역에서 한층 강경해진 미국의 태도 때문에 중국이 비핵화 과정에서 예전만큼 돕지 않고 있다"는 게 그가 꼽은 두 가지 이유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설명대로라면 그간 물밑 접촉을 통해 핵 리스트 신고와 종전선언을 주고받는 '빅딜'에 상당 부분 진전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관측과 달리 북한의 초기 비핵화 조치 관련 '진도'가 미국의 기대수준에 못 미쳤다는 얘기가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에 나섰다가 또다시 '빈손'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미국 조야 내 회의론과 함께 대북 강경 대응론이 비등하는 등 만만치 않은 후폭풍에 부딪히게 돼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부담이 아닐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지난 5월 24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형태로 1차 북미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던 때 만큼의 충격파보다는 상대적으로 덜하다.

하지만 이번에도 판을 뒤흔들어 상대를 들었다 놨다 하려는 트럼프식 '충격요법'임은 분명해 보인다.

'언제든 판을 깰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원하는 방향대로 상대를 움직이게 하려는 벼랑 끝 전술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메시지는 북한 정권수립 70주년인 9·9절을 기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을 정점으로 밀착 관계를 가속하고 있는 북·중 양측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 때문에 비핵화 협상 등 북미 관계에 상처를 입히고 있다고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도 중국이 비핵화에서 예전만큼 돕지 않는다며 제재 완화 조짐 등에 대한 불만을 대놓고 드러냈다.

특히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시점에 대해 '가까운 장래'라고 하면서도 '아마도 중국과의 무역관계가 해결된 뒤'라고 특정함으로써 방북과 미·중 무역문제를 연계한 것은 이를 지렛대로 중국의 대북 공조 균열 조짐을 차단하고 비핵화 협상 과정에도 중국의 '입김'을 배제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뒤집어보면 미·중 무역전쟁이 해결되지 않으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도 연쇄적으로 미뤄질 수 있다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어 중국에는 여러 측면에서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의 당사자인 북한을 향해서도 중국을 '뒷배' 삼아 제재 완화와 종전선언의 동력 확보 등 협상력 확대를 시도하려는 흐름에 제동을 걸면서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행동으로 보이라며 압박 수위를 높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간 미국 내 비판론에도 불구, '북한과 잘 되고 있다'고 반박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본인의 입으로 비핵화와 관련된 진전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한 것은 그만큼 북한에 던진 강한 경고 신호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불과 나흘 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구체적 비핵화 조치를 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믿는다"고 답했던 것과도 확연히 달라진 '톤'이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이래 핵 협상에서 진전이 부족하다고 자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해 직설적 어조로 문제삼은 것과 달리 북한에 대해서는 직접적 비판을 자제하며 '분리대응'에 나섰다.

이를 두고 북한에 대해 압박과 달래기 카드를 동시에 꺼내 들면서 북·중간 틈새를 파고들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특히 북미정상회담 취소 당시 김 위원장에게 마음이 바뀌면 주저 말고 연락 달라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도 김 위원장에게 "곧 만나길 고대하고 있다"며 2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여전히 피력하며 대화의 끈을 살려가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북미 정상이 톱다운식 '통큰 담판'을 위해 2차 정상회담으로 직행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지만, 대화 진전의 숨통이 트이지 않은 상황에서 현실화 가능성은 작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단기간에 북미, 미·중이 돌파구를 찾아내느냐에 따라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재추진 문제와 함께 시 주석 방북 →3차 남북정상회담→ 유엔 총회 등의 '빅 이벤트'가 이어지는 9월의 한반도 비핵화·평화 프로세스 지형도가 좌우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자연스레 2차 북미정상회담의 향배도 영향을 받게 될 전망이다.

'중국 변수'까지 불거지면서 각국의 셈법이 더욱 복잡해진 가운데 한반도 비핵화·평화 시계가 다시 한 번 중대 갈림길에 서게 됐다.

중국과 북한의 대응이 주목되는 이유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