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시설 신고-종전선언' 미합의 속 성과에 대한 확신 부재 가능성
남북정상회담·시진핑 방북·연락사무소 개소 등에 영향 줄 듯
폼페이오 방북 취소에 북미교착 지속… 꼬이는 한반도 정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내주 방북을 전격 취소하면서 한반도 정세에도 부정적 영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이번 방북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친서를 통해 의견 교환을 하고 물밑 실무접촉을 통해 일정을 논의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물밑접촉에서 북한은 먼저 종전선언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반면 미국은 핵시설 신고 등 추가적인 비핵화 조치가 있어야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미 양측은 구체적인 내용에 합의하지는 못했지만, 북한은 일단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들어오면 '선물'을 줄 수 있을 것을 시사했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런 상황에서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내주 방북을 결심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정치 시스템상 핵시설 신고 같은 중대사안은 김정은 위원장 외에는 결심할 수 없는 만큼 북미 양측 모두 김 위원장과 폼페이오 장관의 직접 면담을 통해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판단을 했던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는다.

그러나 최근 측근들의 잇따른 유죄판결로 정치적 곤경에 빠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으로부터 받아낼 결과물에 대한 확실한 담보가 없는 방북은 '위험스러운 도박'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트위터 계정에서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 측면에서 충분한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에 폼페이오 장관에게 이번에는 북한에 가지 말라고 요청했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는 미국의소리방송(VOA)과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와 관련해 어느 정도 긍정적인 신호를 받기를 원했지만 그렇지 못한 것 같다"며 "폼페이오 장관이 다시 북한을 방문했음에도 빈손으로 돌아오면 정치적으로 너무 수치스러울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고 밝혔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도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결과물에 대한 확신이 없이 방북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을 것"이라며 "북한은 핵시설과 기보유 핵무기를 분리해 신고하는 단계적 신고를 염두에 둔 것 같은데 종전선언에 대한 입장정리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방북 취소에 북미교착 지속… 꼬이는 한반도 정세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취소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격적인 결정이 남북관계나 북중관계 등 한반도 정세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선 한국 정부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직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을 여는 방향으로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으로부터 제재 유예에 대한 확답을 받지 못한 상황이지만, 북미관계가 유연한 방향으로 전개되면 연락사무소 개소에 대한 입장차이에서 생기는 외교적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연락사무소 설치와 운영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현재 상황에서 자칫 국제사회의 대북압박 전선에 균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취소는 자칫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4월 열린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를 견인하는 역할을 한 만큼 이번 정상회담은 북미관계가 남북관계를 촉진하는 모양새를 염두에 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가 남북정상회담이나 연락사무소 개소식의 일정에 다소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행사 무산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방북 취소로 북중관계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내달 평양에서 열리는 북한의 정권수립 70주년 행사에 맞춰 참석할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교착상태를 풀지 못하는 북미관계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를 밝히는 트윗에서 "게다가 중국과의 훨씬 더 강경한 교역 입장 때문에 그들(중국)이 예전만큼 비핵화 과정을 돕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라고 밝혀 중국을 직접 겨냥했다.

미국이 대북제재 전선의 유지를 위해 각국의 북한 정권수립 70주년 행사 참가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상황에서 시 주석의 방북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에 대한 불쾌감을 표시한 셈이다.

김준형 교수는 "시 주석의 방북이 확정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는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하고 있어 미국의 속도 조절을 환영할 것"이라며 "오히려 현재 국면에서 가장 속이 타는 외교 주체는 한국과 북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다.

그를 곧 만나길 고대하고 있다"라고 밝혀 대화의 흐름은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만큼 잠시 조정기를 거쳐 북미 간의 대화가 재개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24일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김 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회담 취소를 발표했다가 북한의 태도 변화를 계기로 북미 실무대화를 재개했고, 싱가포르 회담은 예정대로 개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