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란덴브르크 문으로 길게 뻗은 동베를린 시절 건설된 도로와 베를린 전경.
브란덴브르크 문으로 길게 뻗은 동베를린 시절 건설된 도로와 베를린 전경.
정전협정 체결 65주년, 연내 종전을 선언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목표라고 떠들썩합니다. 이런 가운데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은 우리에게 관심 가는 여행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도시이기도 한 베를린은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라 우리에게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할배(tvN의 여행프로그램, <꽃보다 할배>)’들도 그곳으로 떠났습니다. 지금 관심을 가져야 할 국가인 독일과 독일 수도 베를린의 내면으로 들어가 보시죠.

베를린=조은영 여행작가 movemagazine01@gmail.com 사진=무브매거진, 셔터스톡

감동! 서베를린의 시작은 브란덴부르크 문

브란덴브르크 문 위 콰드리카 조각상.
브란덴브르크 문 위 콰드리카 조각상.
파리에 개선문이 있다면 베를린엔 브란덴부르크 문이 있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두고 베를린은 동과 서로 나뉘었으며 1989년 많은 사람이 이 문 앞에 모여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이후 브란덴부르크 문은 베를린 분단과 화합을 상징하는 역사적 장소가 됐다.

발길 닿는 곳마다 '感性 충만'… 서베를린의 原色을 만나다
이 문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정문을 본떠 만들어진 신 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로 1780년대에 건설됐다. 프로이센 제국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시절이다. 1806년 나폴레옹 군대가 이 문을 통과하며 문 위의 콰드리카 조각상을 떼어 갔다가 1814년 해방전쟁 때 프로이센이 승리하며 콰드리카 조각상을 8년 만에 되찾아온 일이 있다. 통일 후엔 전쟁으로 파괴된 문을 동서독이 나눠 복원했다고 한다. 베를린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 장소엔 매년 12월31일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하려는 인파가 몰리고 주요 축구경기가 있을 때엔 구름떼처럼 사람들이 운집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도 바로 여기서 연설했다. 한때는 차량이 통행하기도 했으나 문화재 보존 차원에서 지금은 바닥에 조약돌을 깔고 보행자만 다닐 수 있게 만들었다. 좀 더 가까이 가면 바닥에 예전 장벽이 있었던 자리를 표시해 둔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대체로 관광객들이 브란덴부르크 문을 보려고 서 있는 자리는 동베를린 영역임을 알려 드린다. 이 지역에 발을 들였다면 가까이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비도 지나칠 수 없다. 이곳은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2005년에 건립됐고, ‘유대인 학살추모공원’이라고도 불린다. 1774.7㎡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부지 위에 무려 2711개의 콘크리트 벽돌을 사용해 만들어졌다.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유대인 학살추모공원.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유대인 학살추모공원.
겉에서 보면 단지 콘크리트 벽돌이 늘어선 것처럼 보이지만, 안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깊숙이 걸어 들어가 보면 누구나 숙연해질 수밖에 없는 곳.

투명한 정치의 소망을 담은 국회의사당

브란덴부르크 문을 기준으로 왼쪽에 홀로코스트가 기념비가 있다면 오른쪽에는 ‘라이히슈타크’라 불리는 국회의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1817년 새로운 독일 제국 탄생에 부응해 세워진 원래의 건축물을 1999년 복원하면서 건물 위에 투명 돔이 자리하게 됐다. 원래의 라이히슈타크 건물은 10년의 건축 기간을 지나 1894년 완공됐고, 1918년 독일 군주정이 무너지자 독일 공화국의 의회 토론장이 됐다. 그러다가 1933년의 화재, 1945년의 전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됐고 서독에 있던 의회(분데스타크)가 새로운 수도인 본으로 이전하면서 1945년 이후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투명한 정부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 유리돔을 얹은 독일 국회의사당.
투명한 정부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 유리돔을 얹은 독일 국회의사당.
통일 독일 이후 베를린이 다시 독일의 수도가 되자 분데스타크는 베를린으로 돌아오고 1995년 노먼 포스터의 총 책임하에 라이히슈타크를 재건하게 된다. 그리하여 1999년 완공된 새로운 국회의사당의 의회 토론실 위에는 거대한 유리 돔이 등장하게 됐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의회 진행을 내려다볼 수 있는데, 이는 새로운 독일 정부의 ‘투명성’을 바라는 상징이다.

다음 코스는 ‘베를린의 허브’라 불리는 거대한 공원, 동물정원이란 뜻을 가진 티어가르텐으로 가보자. 과거에 선제후들의 사냥터로 이용된 곳이었고 1830년부터 공원으로 바뀌었다. 곳곳에서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이들, 일광욕하는 시민들을 만날 수 있다. 2㎢의 넓은 면적이다 보니 지도를 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런 곳에서는 길을 잃어야 제맛이다.

도심 속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유롭고 평화로운 시간이 흘러가는 티어가르텐 공원 한가운데에는 1864년 프로이센-덴마크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전승기념탑(Siegessule)이 있다. 높이 67m의 탑 꼭대기에는 승리의 여신상이 베를린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 금빛의 여신상은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겨, 많은 사람이 기억한다. 전망대에 오르면 브란덴부르크 문까지 길게 뻗은 ‘6월17일의 거리’와 티어가르텐 전경이 한눈에 보일 것이다.

베를린시의 상징 동물인 곰.
베를린시의 상징 동물인 곰.
공원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명소, 베를린 동물원은 19세기에 문을 연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이다. 동물원에 관심이 없는 이도 많지만, 참 희한한 것은 동물원 전망의 호텔이나 바는 현재 베를린에서 인기 폭발 중이라는 것이다. 원숭이 우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멍키바는 베를린에서 가장 ‘핫’한 장소이고 동물원 전망(Zoo View)의 ‘25아워스호텔’은 베를린에서 가장 인기 있는 호텔 중 하나다. 도심 속의 호텔은 어때야 하는지, 어떤 재미를 고객들에게 주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호텔, 25아워스호텔은 베를린뿐만 아니라 함부르크에도 있으니 독일 도시를 여행할 때 참고하자.

서베를린 대표적 쇼핑의 성지, 쿠담

파리에 샹젤리제가 있다면 베를린엔 쿠담이 있다. 작은 숍들이 운집해 있는 미테의 골목골목, 하케셔막트의 이국적인 숍들을 누비고 다니는 것도 흥미롭지만, 클래식한 쇼핑 명소들을 돌아보려면 역시 서베를린의 쿠담(Ku’damm)지역으로 향하는 것이 정석이다. 샤넬, 에르메스, 까르띠에 등의 명품 브랜드부터 자라, 에이치앤엠 등의 대중적인 브랜드까지 한곳에 모여 있다. 원래는 쿠르퓌르스텐담(Kurfrstendamm)이 정식 명칭이지만, 줄여서 모두가 쿠담이라 부르는 이 거리는 약 4㎞의 대로로 조성돼 있으며 독특한 외관의 카이저빌헬름(Kaiser-Wilhelm)교회와 70여 개의 숍이 들어찬 유로파센터를 중심으로 시원하게 뻗어 있는 형태다.

베를린의 대표 음식인 커리부어스트.
베를린의 대표 음식인 커리부어스트.
시선 강탈 카이저빌헬름교회는 구 교회와 신 교회 두 파트로 나뉜다. 부서진 모습의 구 교회는 독일 제국의 첫 황제인 빌헬름 1세를 기념하기 위해 1895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세계대전을 겪으며 첨탑 부분이 손실됐고 상당 부분 파괴됐지만 전쟁을 잊지 않기 위해 파괴된 부분을 남기고 복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예배를 위해 바로 옆에 새 교회 건물을 지었다. 공사 중인 기간이 많아 두 건물을 다 보긴 쉽지 않지만, 온통 파란색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압도적인 신 교회의 예배당에 이르면 알 수 없는 벅찬 감동과 감흥이 교차한다. 전쟁과 인간, 종교와 신… 많은 생각에 빠지는 날이다.

쿠담엔 위에서 언급한 25아워스호텔과 연결된 편집매장 비키니 베를린몰을 위시해 카데베백화점, 호텔, 브랜드숍, 자동차 전시장, 레스토랑, 영화관 등이 밀집해 있어 항상 현지인과 관광객이 몰린다. 날이 좋으면 거리의 악사나 댄서, 행위예술가들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어 꽤 운치 있는 하루가 될 수도 있다.

고급 식재료의 프리미엄 푸드코트 르뷔페

쇼핑의 거리 쿠담! 이 거리의 터줏대감이자 랜드마크는 1907년 지어진 카데베(Ka De We)백화점이다. 독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백화점으로 유럽에선 런던 헤롯백화점 다음으로 크다. 한국의 신세계백화점이나 갤러리아명품관 등을 떠올리게 하는 고급스런 분위기지만 우리의 구매 파워와 쇼핑 환경이 좋아진 덕분인지 상품 구성이 그리 위압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쇼핑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분위기, 그리고 큐레이팅된 테마 디스플레이가 흥미로우니 꼭 들러볼 만하다. 맨 꼭대기 층에 있는 르뷔페에서 멋진 식사나 음료를 즐겨도 좋다. 이곳은 입장료를 내고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우리가 흔히 아는 방식의 뷔페가 아니다. 고급 식재료로 조리한 프리미엄 푸드코트라 보면 되는데, 음식 무게당 그리고 요리 한 접시당 가격이 매겨져 있어 음식을 모두 고른 뒤 계산한다. 특급 호텔 뷔페 수준의 질 높은 음식들이라 이런 계산 방식이 꽤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하늘을 볼 수 있는 유리 천장이라 햇볕 아래의 휴식 시간이 무척 달콤하다. 영국인들이 오후의 티 타임을 중시하듯 독일인들도 커피와 케이크를 먹는 오후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당 보충이 필요하다면 그들처럼 르뷔페에서 근사한 커피타임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베를린=조은영 여행작가 movemagazine01@gmail.com

여행메모

◆비어가든 즐기기=베를린에서 정통 독일 음식을 찾는다면 당신은 조금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일 수도 있다. 베를린은 글로벌시티이지 ‘독일’을 대변하는 곳은 아니다. 그래도 정통 독일 음식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비어가든’(독일어로 비어 가르텐(Bier Garten))을 찾으면 된다. 슈바인학세, 슈니첼, 아이스바인 등의 독일 대표 요리와 독일 맥주를 즐겨보자.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베를린에서 시작됐다고 추정(?)되는 커리부어스트는 베를린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으로 꼽힌다. 많고 많은 커리부어스트 프랜차이즈나 테이크어웨이 식당 중 현지인들이 콕 찍어준 곳은 1930년부터 베를린에서 소시지를 팔던 크놉게(Konnopke)가 만든 크놉게의 임비스(Imbiss)다. 커리가루를 뿌린 소시지와 프렌치프라이의 조합이 환상적이다. 커리부어스트를 먹을 땐 케첩과 마요네즈 소스를 기억하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