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인터뷰] 로버트 배로 교수 "소득주도성장 난센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저숙련자 일자리만 줄여"
재정과 통화 등 거시경제학 분야에서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사진)는 “한국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경제적으로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또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리는 것은 생산성이 낮은 근로자의 노동시장 진입을 막는 ‘명백히’ 나쁜 아이디어”라고 비판했다.

배로 교수는 25일(현지시간) 한국경제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에 대해 이 같은 의견을 밝혔다. 배로 교수는 99개국 경제학자들이 협업해 만든 경제학 전문 웹사이트 ‘경제학 연구논문(RePEc: Research Papers in Economics)’에서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5위’에 올라 있다. 로버트 루카스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 토머스 사전트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와 함께 신고전주의 거시경제학의 창시자로, 매년 노벨경제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된다. 미국 경제에 대해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와 규제완화가 성장에 기여했다”면서도 “어리석은 무역전쟁으로 글로벌 무역이 급감하면 불황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경제가 호황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몇 가지 좋은 경제정책을 꼽을 수 있습니다. 2017년에 이뤄진 세제개혁(감세)은 법인세 구조를 개선했습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투자와 성장에 기여할 뿐 아니라 고용과 실질임금을 끌어올릴 겁니다. 개인소득세 감면과 에너지, 환경, 금융 규제완화도 경제 성장에 우호적입니다. 이런 변화들이 (미국 경제의) 생산성을 높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 민주당에서는 지금 상황이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유산이라고 주장합니다.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오바마 행정부에서 실업률이 급격히 떨어지고 일자리도 늘었습니다. 하지만 고용률은 이전 수준을 밑돌았습니다. 2010~2016년에 노동생산성은 거의 늘지 않았고, 경제성장률도 연평균 1.8%에 그쳤습니다. 불황 이후 성장률이 역사적으로 높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바마 행정부의 성적은) 낮은 편입니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 집권 이후 성장률이 평균 2.8%로 오바마 행정부 때보다 높습니다. 올해 2분기 성장률은 4%(연율 기준)가 넘었죠. 성장률이 눈에 띄게 높아진 건 분명 트럼프 행정부의 공이라고 봅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는 ‘부자 감세’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그건 사실과 맞지 않습니다. 부자들뿐 아니라 거의 모든 소득 구간에 걸쳐 개인 소득세율이 떨어졌습니다.”

▶‘트럼프 감세’로 재정적자가 악화될 것이란 우려가 많습니다.

“미국 재정적자 문제의 핵심은 감세라기보다 정부 지출에 대한 통제 실패입니다. 재정적자를 줄이려면 ‘자격지출(복지처럼 수급 요건을 충족하면 정부가 돈을 주는 것)’의 무분별한 팽창을 막는 심슨-볼스위원회식 접근이 필요합니다.”(심슨-볼스위원회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0년 설치한 재정적자대책위원회다. 세금을 1달러 늘릴 때마다 재정지출은 3달러 줄이자고 제안했지만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미국 경제가 단기간에 불황에 빠질 위험은 없습니까.

“어리석은 무역전쟁으로 글로벌 무역이 급감하면 불황이 닥칠 우려가 있습니다. 무역전쟁은 1930년대 스무트-홀리 관세에서 비롯된 불황(1930년대 대공황)과 비슷한 심각한 불황의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중국의 불공정무역과 지식재산권 ‘절도’가 너무 심하니 미국이 무역전쟁을 벌인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중국과 일부 다른 나라의 수입 규제와 외국인 투자제한, 기술 탈취·도용 등의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일리가 없는 건 아닙니다. 이런 문제를 없애는 건 중요한 목표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수입을 줄여 중국이나 다른 나라를 벌주겠다는 건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미국인이 더 피해를 보게 됩니다. 여기에 깔린 중상주의적 사고(무역에서 흑자를 내야 한다는 생각)는 솔직히 웃기는 생각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전쟁을 중국과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전략으로 쓰는 것 아닐까요.

“관세 부과나 그런 위협이 무역장벽 제거로 이어질 수도 있겠죠. (지난달)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무역분쟁을 완화하기로 한 게 그런 사례입니다. 하지만 무역분야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벼랑끝 전술’은 더 큰 무역 규제로 이어지거나 글로벌 무역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EU와의 무역협상 진전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다른 나라를 더 공격적으로 다룰 위험도 커졌습니다.”

▶무역전쟁에도 미국 증시는 여전히 강세인 이유가 뭘까요.

“운 좋게 아직까지 증시가 붕괴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장래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지금 안전한 상황에 있는 게 결코 아닙니다.” (배로 교수는 지난 8일 월스트리트저널 칼럼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돼야 한다면 그건 바로 무역전쟁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를 올리는 추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금리 인상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고, 신흥시장도 Fed의 금리 인상에 취약한 상황입니다.

“Fed는 금리를 정상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 금리 인상에 시동을 거는 데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이제는) 점진적이지만 지속적으로 금리를 올리는 게 좋습니다.”

▶한국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앞날을 어떻게 보십니까.

“소득주도성장은 경제적으로 정말 말이 안됩니다. 경제 성장은 (복지 등 정부가 지급하는) 이전지출을 늘린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창업과 기업 운영을 손쉽게 하는 제도, 신용에 대한 접근성, 양질의 교육, 개방적인 무역, 건전한 세제 등이 경제 성장을 좌우합니다. 한국은 1960년대 이후 경제 성장의 챔피언 중 하나였습니다. 한국이 부유해지면서 지금은 경제성장 속도가 줄었지만 여전히 경제 전망은 좋습니다.”

▶한국 정부는 경제적 불평등 완화를 위해 소득주도성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경제적 불평등을 개선하는 최선의 방법은 (저소득층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양질의 교육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 필요한 건 맞지만 과도한 소득재분배 정책은 해롭습니다.”

▶한국은 소득주도성장을 위해 2년간 최저임금을 29% 올렸습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명백히 나쁜 아이디어입니다. 그런 정책은 생산성이 낮은 근로자의 노동시장 진입을 막고 노조에 가입된 고임금 노동자 간 경쟁을 감소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언젠가 경제적으로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북한의 미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북한이 시장을 개방하고 합리적 제도를 도입하면 경제가 빠르게 성장할 겁니다. 하지만 ‘수렴의 철칙(iron law of convergence)’이란 게 있습니다. 북한의 경제 수준이 한국 등 부자 나라에 근접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수렴의 철칙’은 가난한 나라가 부자 나라를 따라잡는 데 오랜 기간이 걸린다는 이론이다. 배로 교수는 과거 논문에서 가난한 나라와 부자 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 격차가 50% 줄어드는 데 35년, 90% 줄어드는 데 115년이 걸린다고 분석했다.)

■로버트 배로 교수는

'합리적 기대이론' 기틀 제시… 노벨경제학상 단골후보
한경 글로벌 인재포럼서 강연도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74)는 매년 노벨경제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세계 정상급 경제학자다.

한국경제신문 글로벌 인재포럼에서 강연하고 있는 로버트 배로 교수.
한국경제신문 글로벌 인재포럼에서 강연하고 있는 로버트 배로 교수.
1974년 발표한 ‘정부 채권은 순재산인가’라는 논문에서 ‘합리적 기대이론’의 기틀을 제시했다. 경제 주체들이 미래의 조세부담을 예상하고 현재 소비를 줄이기 때문에 정부의 재정지출은 경제적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이론이다. 이 논문은 지금도 가장 많이 인용되는 논문 중 하나로 꼽힌다. 배로 교수는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을 통한 경제 성장을 강조한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한국의 금리, 경제발전 등을 연구했고 외환위기 직전 포스코연구소 초청 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2003년 서울대에서 3주간 아홉 차례에 걸친 강의료로 5만달러를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6년과 2007년엔 한국경제신문이 매년 여는 글로벌 인재포럼에 기조연설자 등으로 참석했다.

당시 그는 “인적 자원의 질은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2014년 한국은행 국제콘퍼런스에도 기조연설자로 나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내총생산(GDP)과 소비가 10% 이상 감소하는) 거시적 재난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약력

△1944년 미국 뉴욕 출생
△캘리포니아공대 물리학과 졸업
△하버드대 경제학 석·박사
△미국경제학회 부회장
△세계은행 자문역
△미국경제연구소(NBER) 연구위원
△미국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
△하버드대 ‘분기경제학저널’ 공동편집인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