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기업 세금 더 짜내 재정 더 푸는 '무리수'
“고용 참사의 원인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성장 잠재력이 저하된 탓”이라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의 주장에 필자는 대체로 동의한다. 보수정권 9년 동안 법인세와 기업 규제는 오히려 늘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인상한 작년 세법개정은 금년 소득부터 적용될 내년 세금이기 때문에 올해까지 엄청난 초과 세수는 순전히 이명박·박근혜 정부 작품이다.

기업가 출신으로 기대를 모았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 선호는 유별났다. 고향, 대학, 교회 인맥이 돈 되는 자리를 골라 빨대를 꽂았다. 고액 급여로 질시 대상인 은행 수장 자리는 이명박 정부에서는 고려대, 박근혜 정부에서는 서강대 출신의 놀이터였다. 우리은행은 지주회사를 만들었다 부쉈는데 이번에 다시 만든다. 산업은행은 정책금융공사와 지주사 및 은행으로 분할했다가 다시 합쳤다. 엄청난 컨설팅 수수료를 허공에 날린 헛발질로 막대한 국민 혈세가 증발했다. 조선사 선수금환급보증(RG)에 휘말린 수출입은행도 엉망이다. RG의 출자전환으로 성동조선 최대주주를 떠맡아 엄청난 자금을 투입했는데 이젠 흔적도 없다. 정책금융 실탄은 소진됐고 금융 경쟁력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법인세 최고세율 25%를 20%로 낮추고 소득세·상속세·증여세 최고세율을 33%로 일치시키는 세제 개편이 추진됐다. 야당이 부자감세라며 반대해 상속·증여세는 그대로 두고 법인세율만 22%로 낮췄다. 당초 인하 목표였던 20%는 시행 전에 폐기됐고 최저한세 인상과 비과세·감면 축소로 실질 부담은 오히려 늘었다. 유례없는 기업소득환류세가 도입돼 법인세 부담은 오히려 3%까지 추가됐다.

법인세 초과 세수는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성장의 자금줄이다. 최고세율 3% 인상 효과가 발휘되는 내년에는 초과 세수도 늘어날 전망이다. 최고세율 35%를 21%로 낮추는 혁명적 조치로 기업 일자리가 넘쳐나는 미국과는 딴판으로 한국의 고용 사정은 지옥이다. 정부가 더 걷은 세금을 들고 요란을 떨지만 얼마나 버틸지 걱정이다. 성숙기를 넘어 쇠퇴기로 접어드는 주력 제품을 대신할 신제품 개발이 기업의 생사를 가른다. 연구개발에 자금을 집중하고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세금 내고 남는 미래수익을 이자율과 위험을 고려한 할인율을 적용한 현재 가치로 환산해 원가와 비교함으로써 투자를 결정한다. 세율과 규제 위험이 높으면 미래수익의 현재 가치는 낮아진다. 투자 결정에 미칠 법인세의 영향을 파악하려면 회계와 세법의 이론과 실무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 달인 작년 5월 필자는 일간지 특집에 초대돼 법인세 인상을 반대하는 전문가 의견을 개진했다. 9명의 교수 판정단이 사전적으로 1라운드 표결을 마치고 전문가 찬반 의견을 들은 뒤 2라운드 표결을 다시 하고 판정단 자체적 논의를 거친 후 3라운드 표결을 진행하는 형식이었다. 당시 법인세 인상에 찬성한 전문가는 현재 재정개혁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 판정단 구성은 경영·경제 교수가 한 명씩 끼어 있었지만 인류학, 교육학, 심리학, 정치학, 외교학 등 인문학 분야 교수가 대세였다. 1라운드 표결에서 인상 ‘찬성 대 반대’는 7 대 2였고, 전문가 의견이 반영된 2라운드에서 6 대 3으로 바뀌었다가 자체 토론 후 3라운드에서는 8 대 1로 끝났다.

법인세 인하 추세에 역행해 우리만 홀로 인상하면 국내 기업 투자는 쪼그라든다. 해외로 사업장을 이전하는 국내외 기업이 늘어나 국내 일자리는 더욱 줄어든다. 미국과 유럽 등 경쟁국이 법인세를 지속적으로 인하해 투자를 유인하는 상황에서 우리만 세금과 최저임금은 올리고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투자와 일자리를 지켜낼 방도가 없다.

세금이 의사 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명확하다. 부부소득이 합산 과세되는 미국에서 과세 기준일인 12월 말을 넘긴 1월에 결혼이 많고, 당해 연도 자녀 공제를 챙기기 위한 12월에 유도분만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경마장 말의 신규 취득에 투자세액공제를 신설했더니 종축장 수익이 크게 늘었다는 연구도 있다. 법인세를 인상해도 투자와 고용에 영향이 없다는 주장은 억지다. 법인세를 국제적 추세에 맞춰 재조정하고 규제를 줄여 기업 투자를 북돋움으로써 고용대란을 신속히 격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