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 (5)] 외교관의 '예'는 '아마도'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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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 (5)] 외교관의 '예'는 '아마도'를 의미한다](https://img.hankyung.com/photo/201808/07.15514481.1.jpg)
점잖게 말하되 때론 설전도 불사
2001년 4월1일 중국 전투기와 충돌한 미군 정찰기가 중국의 하이난다오(海南島)에 ‘무단으로’ 착륙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대(對)중국 강경 정책을 표방하고 있었다. 중국에는 영토주권 침해 문제였다. 양측은 기싸움을 벌였다. 중국은 미국의 ‘사과’를 받아야 한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고 미국은 ‘유감’ 표명은 가능하나 ‘사과’는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양국 외교관들은 오묘한 해법을 찾아냈다. 합의문을 영어로만 작성하되(영어 합의문에는 ‘유감’이라는 표현만 사용) 합의문의 중국어본은 중국 정부가 알아서 발표하도록 했다(중국어본에는 두 번이나 사과했다는 내용 포함). 또 정찰기 처리와 관련, 중국 정부의 주장대로 정찰기를 해체하되 해체된 부품은 미국이 가져가는 것으로 합의했다. 아슬아슬한 곡예를 통해 갈등을 봉합하고 분쟁을 예방한 것이다.
![[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 (5)] 외교관의 '예'는 '아마도'를 의미한다](https://img.hankyung.com/photo/201808/AA.17619720.1.jpg)
세 치 혀로 ‘강동 6주’를 얻기도 하고 전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만큼 외교관의 언어는 중요하다. 그러나 외교관도 크고 작은 실수를 한다. 외교관의 실수는 국가 이익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폴 키팅 호주 총리는 1993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불참한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를 “고집쟁이”라고 했다가 사과해야만 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2016년 런던에서 열린 반부패 정상회의를 앞두고 나이지리아와 아프가니스탄을 “환상적으로 부패된 나라”라고 했다가 문제가 되자 “부패와 열심히 싸우고 있는 나라”로 황급히 정정했다.
협상하려면 잘 듣는 것도 중요
윌리엄 글래드스턴과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19세기 영국의 총리를 수차례 지낸 정치인이다. 한 젊은 부인이 어느 날 저녁에는 글래드스턴이 주최한 만찬에, 다음날 저녁에는 디즈레일리가 주최한 만찬에 초대받아 참석했다. 이 두 정치인에 대한 질문에 그는 답변했다. “글래드스턴 씨 옆에서 식사한 뒤 나는 그가 영국에서 가장 총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나 디즈레일리 씨 옆에서 식사한 뒤 나는 내가 영국에서 가장 총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는 다음 총선에서 누구를 찍었을까?
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