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외환위기 가능성을 알리는 경보음이 커지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터키 금융회사 20곳의 신용등급을 강등 조치했고 독일은 터키에 대한 긴급 금융 지원을 검토하고 나섰다. 통화가치가 급락하는 가운데 금융회사 신용등급도 곤두박질치면서 외국인 자금 이탈이 가속화하는 전형적인 외환위기 경로를 밟고 있다는 분석이다. 터키 리라화 가치는 올 들어 미국 달러 대비 40%가량 폭락했다.
무디스, 터키 금융사 20곳 신용등급 강등… "IMF行 불가피할 것"
무디스는 28일(현지시간) 은행 18개를 비롯해 터키 금융회사 20개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16개 금융회사는 한 단계, 4개 금융회사는 두 단계 신용등급이 내려갔다. 무디스는 “터키 금융회사들의 자금 조달 위험이 증가했다”며 “환경이 당초 예상보다 더 나빠졌다”고 설명했다.

JP모간은 내년 7월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터키 외채가 1790억달러(약 200조원)라고 추산했다. 터키 국내총생산(GDP)의 20%에 달하는 규모다. JP모간은 이 중 은행을 비롯한 민간부문 부채가 1460억달러로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무디스에 따르면 터키 금융회사들이 보유한 외화 유동자산은 480억달러에 불과하다. 터키 중앙은행에 예치한 570억달러가 있지만 이 중 일부는 당장 쓸 수 없는 것이라고 무디스는 밝혔다. 무디스는 “투자자들의 심리가 더 악화되면 터키 은행들은 정부나 중앙은행의 자금 지원을 필요로 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터키의 국가 신용등급도 강등됐다.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 17일 터키 국가 신용등급을 각각 Ba2와 BB-에서 Ba3와 B+로 하향 조정했다. 이미 투자 부적격 등급이던 것을 한 단계 더 내린 것이다.

터키는 최근 리라화 가치가 계속 추락하며 외환위기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리라화 가치는 13일 달러당 7.24리라까지 떨어지면서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리라화 가치는 터키 정부가 외환거래 규제 강화 등 시장 안정화 조치를 내놓으면서 잠시 반등했지만 이번주 들어 다시 하락하고 있다.

터키 위기가 심해지자 독일이 소방수로 나설 가능성이 거론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독일이 터키에 대한 긴급 금융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터키 경제가 무너지면 유럽 은행들의 채권이 부실화하면서 연쇄 충격이 발생할 수 있는 데다 독일로선 난민·테러 문제 등에서 터키의 협조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WSJ는 분석했다.

터키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요청을 피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WSJ는 독일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IMF 없이 독일과 유럽연합(EU)만으로는 터키를 충분히 지원할 수 없다”고 전했다.

터키 리라화 가치 급락은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와 외화 차입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 10%가 넘는 물가 상승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미국과 외교 갈등도 문제를 키웠다. 미국은 터키가 테러 지원 혐의로 미국인 목사를 구금하자 터키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두 배로 높였다.

정부 부채도 급증해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터키 재무부는 지난달 말 기준 정부 부채가 1년 전보다 23.5% 증가해 1조리라를 넘었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말 환율 기준으로 2030억달러(약 225조원) 규모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