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꼬이는 경제, 질문을 다시 해 보세요
미국 캘리포니아주 앞바다는 대구(생선)가 많이 서식하는 황금어장이었는데, 어획량이 자꾸 줄어들었다. 어업단체는 ‘물개들의 포식 탓’이라는 조사 결과를 갖고 주 정부에 “물개 개체 수를 줄여달라”고 요청했다. 주 당국은 검토 끝에 ‘조치 불가능’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개가 대구를 얼마나 잡아먹는지를 추정하는 경로를 파악해보니 2억2500만 가지에 달했기 때문이다. 적정 대구 어획량을 보장하는 물개 개체 수가 얼마인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잘못 손을 댔다가는 생태계 전체를 망칠 위험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한 대학 총장이 들려준 얘기다. 그는 “세상은 이런 복잡계에 있는데 우리나라는 단순계적 사고방식이 철통같이 지배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 유형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고 대학마다 추구하는 목표가 다른데, 정부와 시민단체들이 학생 선발에서부터 교육비용(등록금)에 이르기까지 ‘정답’을 들이밀며 시시콜콜 간섭하는 현실에 대한 개탄이었다.

대학 교육만 그런 게 아니다. 기업들에 대한 정부 간섭도 못지않다. 기업들이 생존 경로가 날로 복잡해지는 글로벌 시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정부가 갖가지 명분을 내세워 채우는 단순계적 발상의 족쇄는 늘어나고 있다. 기업들의 경영방식(지배구조)에서부터 출자방법, 투자 대상, 판매 경로에까지 정부가 ‘정답’을 강요하거나 영역을 제한하는 조치들이 줄을 잇고 있다. 최근 정부가 법제화를 밀어붙이고 있는 ‘협력이익공유제’는 그런 탁상 설계주의의 극치다. 대기업들이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얻은 이익에 대해서는 협력사들의 ‘기여도’를 자율적으로 산출해 나눠주라는 게 협력이익공유제의 골자다. 개인과 기업의 이익 추구를 억제할 경우 초래될 시장경제 활력 저하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각 기업이 명확한 기준도 없이 수천, 수만 개 협력사의 기여도를 어떻게 평가하라는 것인지 제도 설계 자체가 허점투성이라는 지적이다.

책상물림 이론가들의 문제로 꼽히는 게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니 모든 것을 눈에 보이는 범위로 한정시켜 풀어내려고 한다.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경영학계에서 ‘문제의 근원을 파고드는 해법 찾기’의 전형으로 꼽는 사례가 있다. 탁상 이론가들의 문제가 뭔지를 일깨워준다.

미국 수도 워싱턴DC에 있는 제퍼슨기념관 외벽이 크게 훼손되기 시작했다. 담당자가 조사해보고는 ‘청소원들이 기념관 외벽에 묻어 있는 비둘기 똥을 제거하기 위해 독성이 강한 세제를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결과를 보고했다. 관장은 기념관에 비둘기가 많이 날아들지 않도록 관광객들의 모이 주기를 금지했다. 그런데도 비둘기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다시 원인 조사에 들어갔고, 기념관 벽에 서식하는 거미들이 비둘기를 불러들이는 ‘주범’임을 밝혀냈다.

거미를 박멸하기 위한 온갖 조치를 동원했지만 이번에도 거미는 줄어들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원인을 알게 됐다. 밤마다 숲에서 떼를 지어 날아오는 나방들이 거미의 왕성한 서식을 가능케 하고 있었다. 나방은 거미의, 거미는 비둘기의 먹이가 되는 사슬구조를 깨뜨리지 않는 한 어떤 조치로도 기념관 외벽의 비둘기 똥 세례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왜 나방이 날아오는 건가. 제퍼슨기념관이 주위의 다른 건물보다 두 시간이나 먼저 저녁 조명을 밝히는 게 원인이었다. 조명 점등시간을 다른 건물보다 늦추자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 나방과 거미가 사라졌고, 비둘기도 더 이상 몰려들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자영업자들이 급증하자 생존 기반을 돕겠다며 담당 비서관을 신설한 것은 제퍼슨기념관 외벽 사례와 비교된다. 기업이 제공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든 게 자영업자 증가의 원인이라면, 전반적인 산업구조 차원의 정책을 내놓는 게 근원 해법일 것이다. 어떤 문제건 ‘제대로 된 질문’이 최적의 해법을 찾아내는 첫걸음이다. 문재인 정부가 야심차게 시행하고 있는 경제정책들이 왜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는 건지, 그런 관점의 성찰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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