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밀당의 정치공학이 절실한 이유
국민연금 개편이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재원 고갈이 예상되고 다음 세대의 부담이 커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방향은 하나다. 보험료는 더 내고, 연금은 적게 그리고 늦게 받는 거다. 문제는 얼마나와 수용 여부로 귀결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후 소득 보장과 정부의 지급보증 등을 검토하라고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밀당’이라는 말이 있다. 밀고 당기기를 줄여서 쓰는 시쳇말로 남녀 교제에 많이 쓰인다. 밀당의 묘미와 요체는 서로 밀고 당기면서 균형점을 찾아가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남녀 간이 아닌 다중으로 주체를 넓히면 정책을 수립·집행하는 정부와 정책의 직접 이해 당사자인 국민 사이에도 밀당은 성립한다. 정부와 국민 사이에서 조화로운 밀당이 이뤄진다면 정책 목적을 달성하면서 국민적 저항도 줄일 수 있다.

계속되는 일방통행식 정책

복지나 근로자 보호와 관련한 굵직한 정책들은 밀당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2013년 ‘정년 60세법’ 입법 당시 정부와 정치권은 국민의 눈 밖에 날까 주고받기를 포기했다. 정년은 늘어나는데도 후속으로 이뤄져야 하는 임금체계 개편에는 눈을 감았다. 밀당을 거치지 않고 2016년 발효된 정년 60세법은 그래서 청년 일자리 절벽을 잉태하고 있었다. 해마다 호봉이 오르며 급여가 인상되는 임금 체계 아래에서 정년 연장은 인건비 부담으로 직결된다. 그러니 기업의 인사관리 시스템은 신규채용을 줄이는 쪽으로 작동할 수밖에….

올해 최저임금법 개정 과정에서도 밀당 시스템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은 지역별·업종별로 최저임금을 차등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시간당 1만원’이라는 프레임에 밀당이 설 자리는 없었다. 결국 산입범위를 조정하는 수준에 그쳤고, 소상공인의 불만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결과를 가져왔다.

주 52시간 근로제도 모양새는 어쩜 그리 닮았는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당위론은 근로기준법 개정 과정에서 한 방향을 강요했다. 유연근로 같은 보완책이 수반되지 않은 상태에서 52시간 초과근무를 처벌하다 보니 부작용이 곳곳에서 생기고 있다. 사용자들은 근로시간을 줄이고, 근로시간 단축으로 급여가 줄어든 근로자들은 투잡 스리잡으로 내몰리고 있다.

건강한 밀당으로 국민연금 개편

국민연금 개편 과정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까 우려스럽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장년층은 자녀양육과 부모공양 등으로 노후 대비가 절대 부족하다. 청년층은 불완전 취업과 그로 인한 소득의 불안정으로 국민연금 기여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국민연금 운용·관리의 적정성을 확보해야 하는 정부는 이들과 건강한 밀당에 나서야 한다. 노후 소득을 많이 보장하면서, 근로 세대의 부담은 경감하고, 국민연금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균형점을 찾는 고통스러운 밀당 작업이 필요한 이유다. 국가가 지급보증한 국민연금은 국가 채무로 바뀌어 신인도와도 직결된다. “국가 지급보증을 국민연금의 건전성을 강화하는 카드로 활용해야 하는데 기대난”이라는 우려(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현실이 되는 분위기다.

밀당은 정치적으로 포퓰리즘과 원칙주의, 권리와 책임 사이에서의 균형 잡기다. 경제적으로는 비용과 효용, 수입과 지출의 최적화다. 밀당의 정치공학을 모른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면서도 안 한다면 국민 정서를 핑계 삼는 직무유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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