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집시 파티의 열정 전해줄 '장고 3000'
뮤지컬 ‘렌트’에는 보헤미안에 대한 예찬이 등장한다. 라이브 카페에 모인 젊은 예술가들이 한때는 친구였으나 이제는 부동산 업자처럼 변한 베니와 그의 사업 파트너를 향해 한바탕 신나는 무대를 선보이는 1막 마지막 장면에서다. 록 밴드 섹스 피스톨부터 현대 무용의 창시자인 머스 커닝햄까지, 그리고 일본 영화감독인 구로사와 아키라부터 칠레 노벨문학상 수상자 파블로 네루다까지 쏟아지듯 뱉어내는 노랫말 속에는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던 모든 문학과 예술, 문화 창조자에 대한 찬사가 등장한다. 가사에 거론되는 하나하나를 집중해 즐기다 보면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이 작품의 백미다.

노래 제목은 ‘라 비 보엠’. 뮤지컬 ‘렌트’가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미뤄 짐작하게 하는 단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보헤미안의 삶’쯤 되는데,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겐 영혼의 안식처쯤으로 여겨질 노스탤지어의 대상이기도 하다.

‘보엠’은 원래 체코의 한 지명인 ‘보헤미아’의 프랑스식 명칭이다. 물론 ‘보헤미안’이란 ‘보헤미아에 사는 사람’이란 의미다. 더 정확한 어원을 따져보면 조금 이색적이다. 15세기 유럽에서는 유랑 민족인 집시들이 보헤미아 지역에 모여 살았는데, 이들을 본 프랑스인들이 그들을 ‘보엠’이라 칭하면서 ‘보헤미안’이란 용어가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집시들의 삶은 19세기 후반 그 영역이 확장돼 사회의 규범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방랑자나 자유로운 예술가, 사상가나 문학가, 연기를 하는 배우 혹은 지식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됐다. 실리주의를 추구하거나 교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속물 같은 사람을 의미하는 ‘필리스틴(philistine)’의 반대 의미가 된 것도 바로 이런 배경에서다. 영미권에서 방랑자라는 의미로 쓰이는 ‘베가본드’도 보헤미안의 확장된 용어라 할 수 있다.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란 의미의 보헤미안 정신은 오늘날 다양한 문화예술적 확장을 보여주기도 한다. 집시 음악도 그중 하나다. 재즈와 결합해 집시 재즈로 발전하기도 한다. 재즈 같은 음악적 생산물이 자유로운 사고와 발상, 음악적 형식과 충돌하며 새로운 예술적 체험을 선사한다. 그렇다고 어렵거나 난해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중적이고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세계 유수의 음악 페스티벌에서 무대를 꾸미며 인기를 누린 독일의 집시 재즈 밴드가 내한 공연할 예정이다. 바로 ‘장고 3000’이다. 집시 재즈 장르의 거장인 장고 라인하르트의 이름을 딴 이들은 때론 거칠고 때론 자유분방하며 야성 그대로의 집시 팝을 선보이는 음악적 스타일로 유명하다.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보헤미안답게 발칸 리듬과 집시 스윙, 그리고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사투리까지 담은 음악적 다양성을 선보이는 이들의 무대는 마치 한여름 집시들의 파티를 경험하는 듯한 열정과 에너지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내한공연을 진행하는 굿 인터내셔널은 재즈와 클래식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국내 중견 기획사다. 독일의 재즈밴드 ‘살타첼로’를 발굴해 손기정 선생의 기념 음반을 만든 바로 그 음반 브랜드다. 특히 ‘살타첼로’와 해금 연주자인 강은일이 선보인 ‘옹헤야’는 국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장고 3000’ 역시 특유의 스타일을 담아 신명 나는 무대를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유난히 무더웠던 올여름을 시원하게 날려줄 멋진 집시음악과의 조우가 기다려진다.

jwon@s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