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영광반닫이(아래)가 30대 화가 민율 씨의 작품 ‘나무의자’와 나란히 전시돼 있다.
조선시대 영광반닫이(아래)가 30대 화가 민율 씨의 작품 ‘나무의자’와 나란히 전시돼 있다.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조선시대 반닫이가 중앙 벽면에 떡하니 자리잡고 그 위에 2차원 평면에 강렬한 원색으로 고즈넉한 항구 풍경을 묘사한 30대 화가 김명수 씨의 그림 한 점이 걸려 있다. 반닫이 옆으로는 관복장과 소반, 빗접, 경대, 주판, 궁중연회에서 왕이나 왕비와 대비가 사용한 용교의(龍交椅·의자) 등 인테리어 효과를 극대화하는 소품이 질서 정연하게 놓여 있다.

지난 29일 서울 경운동 고미술 전문화랑 다보성갤러리에서 개막한 ‘앤틱 라이프(Antique, Life)-고미술 인테리어’전에서 연출한 절묘한 풍경이다. 언뜻 생각하면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현대적 감수성의 작품과 담백한 느낌의 옛 가구가 한자리에 놓이자 꽤 오랜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던 것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다보성갤러리가 더 많은 사람이 쉽게 고미술품을 접할 수 있게 마련한 이번 전시에는 조선시대 소반, 오동책장, 혼례상과 수납용으로 쓰이는 애기농, 문갑 등 옛 가구 300여 점과 30대 젊은 화가의 최신작 20여 점이 동시에 내걸려 눈을 즐겁게 한다. 작품 가격은 점당 10만원부터 1억2000만원까지 다양하다. 가을을 맞아 기업인과 직장인, 주부 등 컬렉터들이 부담 없는 가격으로 집안 거실이나 사무실, 골프장 클럽하우스, 오피스텔, 호텔 등을 꾸밀 수 있는 기회다. 모처럼 전시장을 찾아 30대 유망한 젊은 작가의 경쾌한 그림과 조상들의 손때가 묻은 고미술의 조화를 읽어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김민재 다보성갤러리 기획실장은 “현대미술이 동시대의 철학과 문화를 녹여냈다면 옛 가구는 오랜 세월 자연과 사람의 정성 어린 손길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며 “옛 가구를 통해 단아하고 아름다운 한국의 고전미와 우리가 계승해야 할 전통문화 유산의 중요성을 환기하기 위해 기획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전시장에는 조선시대 목가구와 장식품을 현대미술가 여섯 명의 회화 및 도자 작품과 함께 놓아 고가구의 묵직함과 현대미술품의 모던함을 더욱 극대화했다. 먹감나무를 대칭으로 집어넣어 여닫이문과 같은 착시효과를 보이는 영광반닫이는 김종규 씨의 비단에 수묵으로 그린 소나무 그림과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양산반닫이 위에 살짝 얹어 놓은 작은 백자호는 옛날과 현대를 연결하며 푸르스름한 빛을 발산하다.

김씨는 “내 작품의 색감이 동양적이어서 그런지 고가구와 잘 어울린다”며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기도 한 고미술품에 대한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을 제고하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제례를 모시는 용도로 사용한 의자 모형의 가구인 교의는 식물과 새의 강렬함을 통해 자연의 따뜻함과 강인함을 표현하는 임현희 씨의 노매도(老梅圖)와 함께 배치했다. 활짝 입을 벌리고 꿈틀거리는 듯한 매화의 향기가 단아한 모형의 교의를 넘나들며 솔솔 새어나온다.

1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평남 박천반닫이는 나무와 파란 하늘이 있는 가을 풍경을 감칠맛 나게 묘사한 민율 씨의 그림과 조화를 이루고, 경상도 지역 한의원과 한약방에서 사용돼 온 약장은 펭귄과 꽃 이미지를 다룬 황나라 씨의 그림과 나란히 걸려 자연과의 공존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이 밖에 조선시대 책장과 사방탁자 위 현대도자, 남원이중창과 백자소호, 19세기 책가도책장과 도자기 등도 서로 어우러져 기품과 맵시를 뽐낸다.

다보성갤러리 측은 “조선시대의 목가구는 시대가 앞설수록 단순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특징 때문에 현대미술작품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며 “고미술품은 철저한 감정과 고증을 거친 희귀한 작품만 모아놨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달 12일까지.

김경갑 기자 kkk10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