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가 한발 양보" 반응…"재판소원 원천 불가능은 아니다" 견해도
법원 '과거사 소멸시효' 근거법은 위헌 결정…"최고사법기관 간 갈등 불씨"
헌재 '재판취소' 불인정…대법원과 해묵은 갈등 풀릴까
헌법재판소가 30일 헌법에 위배되는 법령을 적용한 재판이 아니라면 헌법재판을 통해 법원의 재판을 취소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법원 재판의 위헌성을 헌재가 가리는 이른바 '재판소원'이 과연 현행법 체계에서 성립할 수 있는지를 두고 빚어진 법원과 헌재의 해묵은 갈등이 일단락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헌재의 이번 결정은 위헌인 법령을 적용한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을 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이날 헌재는 하급심 법원에서 과거사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던 판결의 근거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하는 등 사실상 법원 판결을 뒤집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따라서 사법적 판단의 최종 권한이 어디에 있는지를 둘러싸고 최고 사법기관인 헌재와 대법원의 갈등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는 관측도 나온다.

헌재는 이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긴급조치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을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을 취소해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을 각하하면서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은 대법원의 해석론에 따른 것으로 그 취소를 구하는 심판청구는 허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이 합법적인 법률 해석에 따라 판단한 재판에는 헌재가 헌법심판을 통해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이 없음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헌재가 법원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한 발 물러선 것 아니냐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런 평가는 헌재의 2012년 결정과 이번 결정이 대비되는 점을 근거로 삼는다.

2012년 헌재는 옛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23조를 적용한 대법원 판결에 "부칙 23조가 유효라고 판단한 것은 위헌"이라는 취지의 한정위헌결정을 내린 바 있다.

사실상 헌재가 재판소원을 인정한 것이라는 분석이 당시 나오기도 했다.

헌재가 이날 결정을 통해 "합법적으로 내려진 법원의 재판은 헌법소원 대상이 아니다"라고 본 것은 법원과의 갈등 내지 위상 경쟁을 지양하려는 뜻이 담긴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는다.

아울러 양승태 사법부가 헌재 파견 판사를 통해 재판소원과 관련된 헌재의 내부정보를 빼돌린 정황이 최근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는 등 두 기관의 갈등이 빚어낸 부작용이 사회적 문제를 빚자 헌재가 먼저 유화적 제스처를 취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번 결정문을 살펴보면 헌재의 취지는 재판소원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보다는 대법원의 법해석에 위헌적 소지가 발견되지 않아 심사가 필요 없다는 뜻에 가깝다는 점이 확인된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이 사건 대법원 판결들은 헌재의 위헌결정에 반해 긴급조치가 합헌이라거나 합헌임을 전제로 긴급조치를 적용한 바 없다"며 "나아가 긴급조치를 합헌으로 해석하는 취지의 설시도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즉, 긴급조치 피해에 대해 국가배상을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에는 헌법재판을 통해 위헌이 아닌지 따져볼 만한 문제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헌법소원 대상이 아니라고 한 것일 뿐 재판소원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헌재 '재판취소' 불인정…대법원과 해묵은 갈등 풀릴까
헌재의 이런 태도는 함께 청구된 헌법재판소법 68조 1항에 대한 위헌여부 판단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헌재는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한 이 조항을 합헌이라고 판단하면서, 그 근거로 해당 조항이 헌재의 한정위헌결정으로 인해 이미 위헌적 요소가 제거됐다는 점을 들었다.

헌재는 앞서 2016년 4월 28일 헌재법 68조1항에 대해 한정위헌결정을 내렸다.

헌재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령을 그대로 적용해 판단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헌법소원을 허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헌재는 이 한정위헌결정에 따라 앞으로 헌재법 68조 1항은 별도의 법개정이 없더라도 헌재가 결정한 취지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헌재는 2016년 한정위헌결정이 유효하다는 것을 전제로 이날 헌재법 68조 1항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셈이다.

이는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원천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일부 위헌적인 법령에 근거한 판결은 가능하다는 취지여서 법원과 헌재 사이의 미묘한 갈등은 완전히 해소됐다고 볼 수 없다는 분석을 낳고 있다.

실제로 이날 헌재는 법원의 판단 근거가 됐던 법조항에 대해 잇달아 위헌결정을 내리며 사실상 법원 판결을 뒤집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헌재는 민주화운동 피해자가 보상금을 받으면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위헌이라고 봤다.

또 과거사 사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때 민법상의 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것도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했다.

두 결정 모두 관련 법조항이 헌법에 어긋나는 면이 있다고 지적한 것이지만 과거사나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피해를 보고도 국가배상을 받지 못한 이들이 법원으로부터도 배상 판결을 받지 못하자 헌재에 소송을 낸 사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헌재의 이번 위헌결정을 근거로 과거사 및 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은 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이를 두고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특정한 사건에 대한 법률적 평가를 놓고 헌재와 법원 사이의 견해차가 발생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며 "이를 두고 최고 사법기구로서의 위상 경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는데 수긍이 가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