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남성복' 고집… 100여년 세월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명품업계에서 ‘최고급 원단’ 하면 제냐 원단을 으뜸으로 꼽는다. 원재료와 직조 방법, 패턴과 스타일 등 모든 면에서 제냐 원단은 ‘최고급 명품 슈트’의 필수 요소로 통한다. 제냐 원단을 만드는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는 100년이 넘는 역사와 장인정신으로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한 이탈리아 명품 남성복 브랜드다.
'최고의 남성복' 고집… 100여년 세월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가족경영 유지하며 사업 확장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1910년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마을인 트리베로에서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설립한 브랜드다. 최상급 원료를 확보해 혁신적으로 원단을 개발하고 남다른 핏의 슈트를 제작했다. 지금까지도 제냐 가문의 4대손이 가업을 이어가면서 장인정신을 중시하는 브랜드로 유명하다. 현재 100여개국 272개 도시에 504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올해는 카프리 섬, 싱가포르, 베이징, 도쿄, 토론토, 멕시코시티 등에 새 매장을 추가로 냈다. 최근엔 미국 디자이너 브랜드 톰브라운 지분 85%를 인수하며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글로벌 브랜드로서 기반을 다진 건 1960년대부터다. 창업자의 두 아들인 알도 제냐와 안젤로 제냐는 이 무렵 니트, 액세서리, 스포츠웨어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1980년대 후반 들어선 최고급 원단을 관리하는 통합 시스템을 마련하고 생산 공정을 체계화했다. 신흥 시장에 일찌감치 진출해 ‘럭셔리 남성복’의 입지를 다졌다. 1999년엔 럭셔리 여성복 브랜드 아뇨나를 인수하고 2010년 스위스 명품시계 브랜드 지라드페리고와 협업을 진행하는 등 보폭을 넓히기 시작했다.

2013년엔 최고급 자동차 브랜드 마세라티와 협업을 통해 한정판 세단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에르메네질도 제냐’를 공개하는 등 최고급 명품 남성복 브랜드의 이미지를 견고히 쌓아갔다.

까다로운 공정으로 직조한 원단

'최고의 남성복' 고집… 100여년 세월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제냐는 안정적으로 원단을 공급받기 위해 2014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에 있는 아킬울 농장 지분을 매입했다. 최고급 메리노 울 원단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올초엔 전통적 직조 방법을 유지하고 있는 이탈리아 모자 브랜드 카페이피시오 세르보의 지분을 인수하는 등 생산능력을 키우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제냐는 창립 이후 지금까지 최고급 천연섬유를 원산지에서 직접 구입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제냐 원단이 최고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호주산 초극세 울, 내몽골산 캐시미어, 남아프리카산 모헤어, 페루산 알파카와 비쿠냐 등 현지에서 직접 원료를 공수해왔다.
'최고의 남성복' 고집… 100여년 세월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원단의 품질을 검수할 때도 전통방식 그대로 장인이 손수 실과 바늘을 사용해 미세한 흠을 찾아내고 있다. 원사의 솜털을 세워 아주 부드러운 캐시미어 원단의 감촉을 만들어내는 코밍(combing) 작업은 100년 전과 동일하게 산토끼꽃 열매(티즐)를 사용해 진행한다. 기계로 털을 세우는 것보다 더 고급스럽고 자연스러운 광택과 촉감을 낼 수 있다. 최근엔 미세한 흠집까지 찾아내는 최첨단 레이저 기술도 도입했다.

제냐는 전 세계에서 공수한 최고급 원단을 워싱, 코밍, 방적, 염색, 와핑, 피니싱 등의 과정을 거쳐 제냐 원단으로 완성한다. 유명 원단 경매 시장에서 최고급 울 원단을 설명할 때 ‘제냐 퀄리티’라고 표현할 정도로 제냐는 최고급 원단만을 고집한다. 불순물을 제거하는 워싱, 결을 일정하게 만드는 코밍 과정을 거친 뒤 염색해 원단을 짠다. 색색의 실을 섞어 고급스러운 색감의 울 원단을 직조하면 품질관리팀이 철저하게 원단을 관리한다.

자연에서 얻은 색감 사용

'최고의 남성복' 고집… 100여년 세월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올가을·겨울 컬렉션의 주제를 ‘스노 라이팅’으로 정했다. 눈을 매개체로 자연과 사람의 대화, 소통을 표현하고자 했다. 스포티한 디자인, 자연스러운 실루엣이 특징이다. 넉넉한 품의 니트, 허리 라인에 여유를 둔 바지 등을 내놨다. 소재는 울, 캐시미어 자카드, 브러시드 알파카, 코듀로이 등을 다양하게 썼다. 모든 색상은 꽃, 허브, 나무, 나뭇잎, 뿌리 등 자연에서 얻은 소재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에델바이스 꽃의 흰색, 조약돌에서 얻은 회색, 자작나무의 베이지와 브라운, 소나무의 그린, 살구버섯의 옐로, 진달래의 오렌지 등을 채택했다.

의류뿐 아니라 가방, 신발 등도 캐주얼해졌다. 가죽으로 만든 백팩과 신발, 해링본 패턴의 서류가방 등을 선보였다. 또 젊은 층이 선호하는 밝은 색상을 사용한 ‘오아시 캐시미어’ 제품군도 선보였다.

천연 소재의 색감과 고급 캐시미어를 적용한 오아시 캐시미어는 재킷과 스웨터, 니트 등으로 나왔다. 이 제품군은 제냐가 1930년부터 시작한 산림 재복원 사업에서 착안했다. 환경을 보호하면서 자연과 친밀한 소재, 색상으로 제품을 선보이겠다는 브랜드 철학과 맞닿아 있다. 이 밖에 여행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펠레 테스타 트래블 컬렉션’, 내구성이 뛰어난 천연 메리노 울 소재로 제작한 Z제냐 라인의 ‘워시 앤 고 슈트’ 등 젊은 층을 위한 다양한 신제품을 출시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