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자동차에 엔진 관련 부품을 공급하는 A사(1차 협력회사)는 최근 2차 협력업체인 B사로부터 설비를 통째로 인수해달라는 ‘최후통첩’을 받았다. 장고를 거듭한 끝에 A사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B사의 설비를 사들였다. ‘갑(甲)’인 A사가 ‘을(乙)’인 B사의 협박 아닌 협박을 들어준 사연은 이렇다.

B사는 지난해 자동차 시장 침체로 공장 가동률이 60%대로 떨어지면서 적자를 냈다. 부품 주문 물량은 줄어드는데 인건비와 관리비는 늘면서 손실이 커졌다. 은행 문을 두드려 봤지만 허사였다. 은행마다 차 부품사를 상대로 한 어음 할인 및 신규 대출을 거부하는 등 ‘돈줄’을 죄면서다.

궁지에 몰린 B사는 올초 A사에 납품 단가를 올려달라고 요구했지만 ‘퇴짜’를 맞았다. ‘자기 코가 석 자’인 A사가 난색을 표하면서다. 자금난에 휩싸인 B사는 급기야 A사가 발주한 기존 주문을 반납하겠다고 ‘선언’했다. 자사의 설비를 인수해달라는 요청도 했다. 설비를 사주지 않으면 공장 문을 닫겠다고 했다. A사 대표는 “완성차 업체와 거래를 유지하려면 2차 협력사로부터 부품을 받아 공장을 돌려야 한다”며 “폐업 직전인 B사를 어쩔 수 없이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그나마 B사처럼 회사나 공장 일부를 팔 수 있으면 다행이다. 인수자를 찾지 못해 공장 문을 닫고 직원들을 내보내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인천에 공장을 둔 부품업체 C사 대표는 “영세한 2·3차 부품사들이 회사 또는 설비 일부를 팔려고 내놔도 사려는 곳이 없다”고 토로했다.

폐업을 결정한 2·3차 협력업체 대표들이 부품을 제조하는 데 필수적인 ‘금형(금속으로 만든 거푸집)’을 들고 잠적하는 일도 속출하고 있다. 1차 협력사에 공장과 설비 인수 등을 압박하기 위해서다. 통상 모듈(수십~수백 개의 소형 부품을 모은 덩어리 부품)을 생산하는 1차 협력사로선 부품을 대는 2·3차 협력사가 금형을 빼돌리면 생산라인을 곧바로 멈출 수밖에 없다. 한 부품사 대표는 “얼마나 많은 2·3차 협력사가 부도 위기에 처했는지 정확하게 파악조차 안 된다”고 말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