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중간관리 "작전 불가능"… 경찰지휘부 "겁먹어서 못 올라가는 거야?"
경찰특공대 구체적 상황 인지 못 하고 투입돼… 소방차 2대만 배치



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용산 참사 당시 경찰이 안전대책 미비에도 진압을 강행한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현장 중간관리자의 작전연기 요청까지 묵살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제대로 된 안전 조치 없이 유류와 화염병 등 위험물이 다수 있는 망루로 무리하게 진압 작전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경찰의 안일한 안전 의식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용산 참사는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구 남일당 빌딩에서 재개발 사업 관련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 철거민들을 경찰이 강제진압한 사건이다.

진압과정에서 철거민 5명, 경찰특공대원 1명이 사망하고 철거민과 특공대원 30명이 다쳤다.

5일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용산 참사 사건' 조사결과에 따르면 경찰은 크레인과 컨테이너를 통한 망루 진입작전 계획을 세우면서 망루 진입방법, 망루 구조 분석, 화재 발생 등에 대한 구체적인 대비책은 세우지 않았다.

300t 크레인 2대를 동원한 투입 작전을 계획했지만, 실제 현장에는 계획과 달리 100t 크레인 1대만 동원됐다.
"겁먹었냐"… 경찰지휘부, '용산참사' 작전연기 현장요청 묵살
경찰특공대 제대장은 계획과 다른 준비상황에 경찰특공대장과 서울청 경비계장에게 작전이 불가능하니 작전을 연기해달라고 건의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서울청 경비계장이 제대장에게 "겁먹어서 못 올라가는 거야? 밑에서 물포로 쏘면 될 것 아냐"라며 거절했다고 진상조사위는 밝혔다.

서울청 차장은 작전 개시 때 "안전하게 진압을 해라"고 지시했지만, 현장 상황은 전혀 안전하지 않았던 셈이다.

당일 오전 6시 30분께 경찰특공대의 위험천만한 옥상 1차 진입작전이 개시됐다.

농성자들이 화염병을 투척해 1차 화재가 발생하고, 경찰의 컨테이너가 망루와 충돌해 유류물이 망루와 옥상에 가득 차자 경찰은 일단 철수했다.

하지만 애초 계획과 많이 달라진 상황에서도 경찰지휘부는 작전을 일시 중단하거나 변경하지 않고 2차 진입을 결정했다.

1차 진입 후 망루 내 인화성이 강한 유증기가 가득 찼고 특공대원들의 소화기가 상당 부분 소진됐지만, 소화기 보충교체도 하지 못하고 급하게 재진입이 이뤄졌다.

특공대원들은 "2차 진입 때 유류물, 염산 같은 냄새였는데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독한 냄새가 났다"며 "대원 상당수가 유증기로 술에 취한 듯 몽롱한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진상조사위는 1차 진입 때 상황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2차 진입을 강행한 것은 특공대원들과 농성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무시한 작전 수행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특공대는 망루에 있는 위험물의 양과 위치, 망루 내부 구조와 현장 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도 알지 못한 채 작전에 투입됐다.

경찰은 정보요원이 채증한 망루 사진이 있었지만, 망루 구조도 확인하지 않았다.

아울러 휘발성 물질이 많았음에도 화학 소방차와 고가사다리차는 현장에 오지도 않았다고 진상조사위는 밝혔다.
"겁먹었냐"… 경찰지휘부, '용산참사' 작전연기 현장요청 묵살
단 2대의 펌프 소방차만 배치됐고 진압 작전 사전예행연습 시간도 확보하지 못했다.

추락사 방지를 위한 안전매트도 부족했다.

안전매트 46개가 준비됐지만, 연장 길이가 63.5m에 불과해 건물 둘레 74m에 10m 이상 미치지 못했다.

실제 농성자가 추락한 지점에는 안전매트도 설치되지 않았다.

특공대원과 농성자들의 안전이 위협되는 상황을 경찰지휘부는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농성자 검거만을 목적으로 진압 작전을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작전 전날 경찰은 철거업체 직원들이 농성자들을 위협하기 위해 불을 지르고, 진화에 나선 소방관들을 방해하고 위협하는 상황을 묵인했다.

철거업체의 위협적이고 불법적인 행동에 경찰이 미온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특히 2005년 오산세교지구 망루 농성 진압 작전과 비교했을 때 용산 진압 작전의 안전대책 부실함은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2005년 경찰은 특공대 투입 전 실전을 방불케 하는 예행연습을 하고 300t, 450t 크레인 2대와 소방차 23대를 배치했다.

진상조사위는 "경찰지휘부가 상황 변화를 파악하고 지휘를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다"며 "조기 진압 결정이 인명피해를 야기한 원인으로 보인다.

경찰이 국민의 생명·신체를 보호할 의무를 위반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