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CEO & Issue focus] 비자이 샤르마, 인도 최대 모바일 결제기업 페이티엠 창업자·CEO
인도에선 상거래의 90% 정도가 현금으로 이뤄진다. 신용카드 사용 비율은 미미하다. 전 국민의 절반은 신용카드는커녕 은행 계좌조차 없다. 인도에서 모바일 결제 사업이 가능할까. 보통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비자이 샤르마(40)는 이미 8년 전 모바일 결제 기업 페이티엠을 설립했다. 그리고 3억 명이 넘는 회원을 확보한 인도 최대의 전자결제 기업으로 키웠다. 페이티엠의 기업 가치는 100억달러로 평가받고 있다. 샤르마도 개인 자산이 17억달러로 인도에서 가장 젊은 억만장자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그런 ‘벼락부자 스토리’ 같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15세에 대학 들어간 신동

샤르마는 1978년 인도 북부의 하두아간즈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은 집안에서 자란 샤르마는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보였다. 샤르마의 명석함을 알아본 선생님들은 그가 학년을 뛰어넘어 14세에 고교 과정까지 마칠 수 있도록 했다.

샤르마는 15세에 델리공과대에 입학했지만 이내 어려움에 부딪혔다. 고향에서 힌디어를 썼던 그는 영어로 이뤄지는 델리공대 수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이도 어려 친구조차 사귀기 힘들었다. 그는 “매우 끔찍하고 힘들었던 시간”이라고 회상했다. 언제부턴가는 아예 수업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도서관에 앉아 책을 뒤적이거나 컴퓨터실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혼자 코딩을 공부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다.

마냥 그렇게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영어를 익혀야겠다고 생각한 샤르마는 델리 시내에 있는 중고책 시장에서 철 지난 영문 잡지를 사 왔다. 한 손엔 영어사전, 한 손엔 잡지를 들고 한 단어씩 해석하면서 읽어 나갔다.

샤르마가 배운 것은 영어만이 아니었다. 당시 그가 즐겨 읽은 잡지는 ‘포천’이었다. 포천은 신생 벤처기업의 천국 미국 실리콘밸리로 그를 안내했다. 1990년대 중반 막 떠오르기 시작한 인터넷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야후, 넷스케이프 등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신생 기업들을 다룬 기사가 그에게 영감을 줬다.

포천에 등장한 기업가 중엔 대학을 제대로 졸업하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대학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던 샤르마는 그들을 보면서 희망을 얻었다.

불가능해 보였던 전자결제 사업

샤르마는 창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대학 재학 중일 때였다. 친구들과 함께 XS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인터넷 콘텐츠 관리 회사를 설립했다.

회사를 운영하려면 일정한 연락처가 있어야 하는데 샤르마에겐 휴대폰은 물론 유선전화도 없었다. 고육지책으로 학교 근처 단골 가게의 전화번호를 명함에 새겨서 다녔다. 누군가가 가게로 전화를 하면 가게 주인은 샤르마가 잠시 외출했다거나 회의 중이라고 둘러대고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받아놓았다. 그러면 샤르마는 가게에 들러 그 번호로 회신을 했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로 경영이 어려워진 와중에 사기까지 당해 큰 손실을 입었다. 버스요금을 낼 돈이 없어 웬만한 곳은 걸어서 가고 끼니조차 때우기 힘들던 시절이었다.

샤르마는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회사를 세우기로 했다. 2001년 페이티엠의 모기업인 원97을 창업했다. 그러나 원97도 2001년 9·11 테러 여파로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면서 어려움에 빠졌다. 창업 과정에서 빌린 돈도 갚아야 했다. 여기저기 강연을 다니면서 겨우 생계를 유지했다. 다행히 한 투자자의 도움으로 회사를 살릴 수 있었다.

샤르마는 2010년 8월 처음으로 모바일 결제 사업에 대한 구상을 이사회에서 공개했다. 인도는 금융, 특히 모바일 금융의 불모지나 다름없었지만 장래성이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일을 할 때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페이티엠에 투자하면서 샤르마의 도전에 힘을 실어줬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의 금융 계열사 앤트파이낸셜은 페이티엠에 10억달러 이상을 투자해 최대주주가 됐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도 페이티엠에 투자했다.

“더 큰 기회 올 것” 변함없는 도전정신

인도에선 상점에서 물건을 고르고 페이티엠 앱(응용프로그램)을 작동한 뒤 계산대에 놓인 QR코드를 스캔해 결제를 끝내는 모습이 점점 일반화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포레스터에 따르면 인도 전자결제 시장 규모는 2016년 기준 160억달러로 중국(6810억달러)은 물론 한국(460억달러)보다도 작다. 그러나 성장 속도는 매우 빨라 2021년 640억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됐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탈세와 부정부패 근절을 목표로 ‘현금 없는 경제’를 추진하면서 디지털 결제 시장을 키우고 있다. 이런 정책은 페이티엠이 급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벅셔해서웨이도 지난달 페이티엠에 투자하기로 했다. 버핏 회장이 인도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처음이다.

시장이 급성장하는 만큼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구글페이가 이용자 2200만 명을 확보했고 삼성과 샤오미도 인도 전자결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샤르마는 더욱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현재 850만 개인 페이티엠 가맹점 수를 내년까지 1700만 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그는 “인도 국민 5억 명을 전자결제를 통해 주류 경제권으로 끌어들이겠다”며 “2022년까지 인도인 대부분이 페이티엠을 이용해 음식값, 세금, 등록금, 보험료까지 내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도전정신도 전혀 꺾이지 않았다. 샤르마는 “난 아무것도 없이 태어나 아무것도 물려받지 않았다”며 “인도 최고의 성공 스토리를 써 보이겠다”고 말했다. 또 “지금까지 경험한 것보다 몇 배는 더 큰 기회가 우리 앞에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