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유발 하라리의 경고… "정보 집중이 디지털 독재자 키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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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유발 하라리 지음 / 전병근 옮김
김영사 / 572쪽│2만2000원
유발 하라리 지음 / 전병근 옮김
김영사 / 572쪽│2만2000원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여유가 없다. 다가오는 생태학적 위기, 커져가는 대량살상무기의 위협, 현상 파괴적인 신기술의 부상은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과 생명기술이 인간에게 생명을 개조하고 설계할 힘을 건넬 것이다. 곧 우리 종이 주인공인 무대의 막이 내려가고 완전히 다른 극이 시작되려 한다.”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 역사학과 교수는 신간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인류가 처한 위기를 이렇게 진단한다. 위기의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20세기 이후 파시즘, 공산주의와의 경쟁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자유주의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곤경에 처했다는 것. 도널드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와 영국의 브렉시트가 대변하듯 이민자와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저항감은 높아가고 장벽과 방화벽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다른 두 가지는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생명기술과 정보기술의 쌍둥이 혁명이다.
“우리는 지금 엄청난 두 가지 혁명이 합쳐지는 지점에 와 있다. 한편으로는 생물학자들이 인간 신체, 특히 인간의 뇌와 감정의 신비를 해독하고 있다. 동시에 컴퓨터 과학자들은 우리에게 유례없는 데이터 처리 능력을 선사하고 있다. 생명기술혁명과 정보기술혁명이 합쳐지면 빅데이터 알고리즘을 만들어낼 것이고 그것은 내 감정을 나보다 훨씬 더 잘 모니터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다음에 권위는 아마 인간에서 컴퓨터로 이동할 것이다.”
전작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에서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살폈던 하라리 교수가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지금, 여기’의 문제들이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우리가 직면한 최대 도전과 과제는 무엇이며, 무엇에 관심을 갖고 아이들에게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의 쌍둥이 혁명이 초래할 변화는 너무나 심대해서 일자리, 자유, 평등 등 삶의 기본구조마저 바꿔놓을 것으로 저자는 전망한다. 우선 쌍둥이혁명은 조만간 수십억 명을 고용시장에서 밀어내고 자유와 평등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AI의 연결성과 업데이트 기능은 수백만의 개별 인간 노동자를 수백만의 개별 로봇과 컴퓨터로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 개별 인간이 통합된 네트워크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저자는 내다본다. 창의성이 필요한 예술 영역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입력과 산출을 수학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 음악은 빅데이터 분석에 가장 취약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빅데이터 알고리즘은 모든 권력이 소수 엘리트의 수중에 집중되는 디지털 독재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 경우 인류의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가 사회의 어떤 부문에도 끼지 못하고 하찮은 존재로 전락하는 ‘무관함(irrelevance)’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설령 부를 가진 극소수가 보편적 복지를 위해 기본소득을 제공한다 하더라도 인간이 자기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것은 훨씬 무서운 시나리오다.
또 하나의 무서운 시나리오는 ‘디지털 독재’다. 저자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정보처리와 결정 권한을 분산하는 반면 독재는 한곳에 집중시킨다. 그런데 너무 많은 정보를 한곳에 모으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과거 소련이 미국과의 경쟁에서 패배한 원인도 결국 정보처리의 비효율성에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의 시대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AI는 정보가 많고 집중될수록 훨씬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인간의 권위가 빅데이터 알고리즘으로 넘어가고, 권위주의 정부가 이를 이용해 시민을 통제하는 디지털 독재의 위험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데이터를 극소수 계층이 독점하면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등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저자는 “AI와 생명공학이 결합되면 인류는 소규모 슈퍼휴먼 계층과 쓸모없는 호모 사피엔스 대중의 하위계층으로 양분될 수 있다”고 경계한다.
저자는 이 밖에 복잡하게 교차 갈등하는 공동체와 문명의 정체성, 민족주의와 종교적 근본주의의 부활, 탈진실 시대와 대안으로서의 세속주의 등 인류의 거의 모든 현안을 도마에 올려놓고 대안을 모색한다.
희망이 없지는 않다. 저자는 정보·생명기술의 도전을 해결하려면 지구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 민족주의와 종교, 문화가 인류를 적대적인 진영들로 나누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인류가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조금씩 겸손해진다면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고 있다고 말한다. 가짜뉴스에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다. 저자는 “돈을 내지 않는 대신 질 낮은 상품과 같은 뉴스를 접하는 소비자는 부지불식간에 스스로 상품으로 전락한다”며 “좋은 뉴스에는 그에 상응하는 값을 치러야 한다”고 조언한다. 주제는 무겁지만 시간과 공간을 종횡으로 달리며 풀어내는 저자의 이야기 솜씨 덕분에 술술 읽히는 것이 장점이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 역사학과 교수는 신간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인류가 처한 위기를 이렇게 진단한다. 위기의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20세기 이후 파시즘, 공산주의와의 경쟁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자유주의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곤경에 처했다는 것. 도널드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와 영국의 브렉시트가 대변하듯 이민자와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저항감은 높아가고 장벽과 방화벽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다른 두 가지는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생명기술과 정보기술의 쌍둥이 혁명이다.
“우리는 지금 엄청난 두 가지 혁명이 합쳐지는 지점에 와 있다. 한편으로는 생물학자들이 인간 신체, 특히 인간의 뇌와 감정의 신비를 해독하고 있다. 동시에 컴퓨터 과학자들은 우리에게 유례없는 데이터 처리 능력을 선사하고 있다. 생명기술혁명과 정보기술혁명이 합쳐지면 빅데이터 알고리즘을 만들어낼 것이고 그것은 내 감정을 나보다 훨씬 더 잘 모니터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다음에 권위는 아마 인간에서 컴퓨터로 이동할 것이다.”
전작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에서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살폈던 하라리 교수가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지금, 여기’의 문제들이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우리가 직면한 최대 도전과 과제는 무엇이며, 무엇에 관심을 갖고 아이들에게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의 쌍둥이 혁명이 초래할 변화는 너무나 심대해서 일자리, 자유, 평등 등 삶의 기본구조마저 바꿔놓을 것으로 저자는 전망한다. 우선 쌍둥이혁명은 조만간 수십억 명을 고용시장에서 밀어내고 자유와 평등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AI의 연결성과 업데이트 기능은 수백만의 개별 인간 노동자를 수백만의 개별 로봇과 컴퓨터로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 개별 인간이 통합된 네트워크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저자는 내다본다. 창의성이 필요한 예술 영역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입력과 산출을 수학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 음악은 빅데이터 분석에 가장 취약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빅데이터 알고리즘은 모든 권력이 소수 엘리트의 수중에 집중되는 디지털 독재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 경우 인류의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가 사회의 어떤 부문에도 끼지 못하고 하찮은 존재로 전락하는 ‘무관함(irrelevance)’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설령 부를 가진 극소수가 보편적 복지를 위해 기본소득을 제공한다 하더라도 인간이 자기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것은 훨씬 무서운 시나리오다.
또 하나의 무서운 시나리오는 ‘디지털 독재’다. 저자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정보처리와 결정 권한을 분산하는 반면 독재는 한곳에 집중시킨다. 그런데 너무 많은 정보를 한곳에 모으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과거 소련이 미국과의 경쟁에서 패배한 원인도 결국 정보처리의 비효율성에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의 시대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AI는 정보가 많고 집중될수록 훨씬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인간의 권위가 빅데이터 알고리즘으로 넘어가고, 권위주의 정부가 이를 이용해 시민을 통제하는 디지털 독재의 위험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데이터를 극소수 계층이 독점하면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등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저자는 “AI와 생명공학이 결합되면 인류는 소규모 슈퍼휴먼 계층과 쓸모없는 호모 사피엔스 대중의 하위계층으로 양분될 수 있다”고 경계한다.
저자는 이 밖에 복잡하게 교차 갈등하는 공동체와 문명의 정체성, 민족주의와 종교적 근본주의의 부활, 탈진실 시대와 대안으로서의 세속주의 등 인류의 거의 모든 현안을 도마에 올려놓고 대안을 모색한다.
희망이 없지는 않다. 저자는 정보·생명기술의 도전을 해결하려면 지구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 민족주의와 종교, 문화가 인류를 적대적인 진영들로 나누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인류가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조금씩 겸손해진다면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고 있다고 말한다. 가짜뉴스에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다. 저자는 “돈을 내지 않는 대신 질 낮은 상품과 같은 뉴스를 접하는 소비자는 부지불식간에 스스로 상품으로 전락한다”며 “좋은 뉴스에는 그에 상응하는 값을 치러야 한다”고 조언한다. 주제는 무겁지만 시간과 공간을 종횡으로 달리며 풀어내는 저자의 이야기 솜씨 덕분에 술술 읽히는 것이 장점이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