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항구 도시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함부르크 란둥스브뤼케 역. 해질녘이면 붉은 석양과 화려한 불빛이 항구 도시의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전형적인 항구 도시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함부르크 란둥스브뤼케 역. 해질녘이면 붉은 석양과 화려한 불빛이 항구 도시의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함부르크에 지인이 살고 있어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면 독일의 많은 도시 중 함부르크에 굳이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지는 미지수다. 그런데 가서 보니 그동안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함부르크는 오랫동안 여행지로 많은 사랑을 받은 곳이었다. 요즘 우리의 여행 트렌드가 한 장소 자세히 보기, 머무르기, 그리고 테마여행이라던데 그런 트렌드에 힘입어 독일 북부 지역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어 반가운 일이다. 베를린에 이어 함부르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을 기대해 본다. 다가올 12월엔 도시의 이곳 저곳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성대하게 열리니 겨울 여행지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글=조은영 여행작가 movemagazine01@gmail.com 사진=무브매거진, 픽사베이

함부르크, 물 위의 웅장한 성

물 위에 우뚝 솟은 '城의 도시' 함부르크
여유와 풍요로움이 넘치는 함부르크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물 위의 웅장한 성’이라 하고 싶다. 중세시대 북유럽 해상무역을 장악한 한자동맹의 중심이었고 오래전부터 유럽 통상의 수도 역할을 해온 터라 독일에서 가장 부유한 지방이었다.

엘베강 하류에 위치한 독일 제2의 도시인 함부르크에는 실제로 백만장자가 가장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베를린에선 전형적인 독일 모습이나 분위기를 느끼기 힘들지만 함부르크에서는 과거부터 다져진 강대 부국 독일의 모습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함부르크는 서울보다 면적이 넓다. 이 도시 하나만 둘러보려고 해도 며칠을 머물러야 할 정도로 볼거리가 충분하니 생각했던 것보다 여정을 길게 잡길 권하고 싶다.

함부르크는 항구 도시다. 항구는 함부르크의 시작이며 도시의 기초다. 란둥스브뤼케(Landungsbrcke)를 방문해 62번 유람선을 타고 컨테이너선, 크루즈선, 요트 사이를 넘나들며 도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특히 항구에서의 크루즈 여행은 추운 겨울, 함부르크를 즐기는 또 다른 매력적인 방법이다.

항구라는 특성상 이 도시는 일찍이 이민자들이 먼 곳에서 흘러와 정착했다. 포르투갈 식당이 군락을 이룬 모습도 보인다. ‘노스 시 이즈 데드 시(North Sea is Dead Sea)’란 영화를 보면 함부르크의 도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14세 동양인 소년이 현실을 탈출하고자 무작정 보트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거칠기도 하고 부유함이 흘러넘치는 항구의 독특한 분위기는 영화인들을 끌어모았다. 항해사와 홍등가 매춘부, 예술가들이 출연하는 영화가 함부르크에서 많이 제작됐는데 ‘007 제임스본드: 투모로우 네버다이’와 독일 출신 세계적인 감독 빔 밴더스의 ‘더 아메리칸 프렌드(The American Friend)’ 등이 있다.

항구 주변엔 홍등가도 있기 마련, 함부르크에는 세계적 명성의 유흥가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죄 많은 1마일’이라는 별명을 가진 레퍼반(Reeperbahn)이다. 세련된 나이트 라이프와는 관계가 멀지만 당신의 취향과는 관계없이 이 거리를 잠깐이라도 둘러보는 것은 도시의 역사를 느끼는 데 도움이 된다. 예전에 비하면 홍등가 규모가 많이 축소돼 지금은 명맥 유지 정도만 하고 있다 하니, 이도 언제까지 남아있을지는 미지수다.

지금은 다양한 레스토랑, 클럽, 바 등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으로 안전이 걱정된다면 마음을 놓아도 된다. 더구나 비틀스 팬이라면 더더욱 레퍼반을 방문할 이유가 있다. 1960~1962년 레퍼반의 더 스타클럽(The Star Club)에서 활동했던 존 레넌은 함부르크에 특별한 감정을 가졌고 이는 비틀스 광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광장과 거리 곳곳에는 오늘도 제2의 비틀스를 꿈꾸는 젊은 뮤지션들이 거리를 메운다.

레퍼반은 FC 상파울리로 유명한 상파울리 지역에 있다. ‘함부르크의 심장’이란 뜻의 빨간 하트 로고가 귀여운 상파울리 맥주, 아스트라(Astra)를 마시는 것도 잊지 말자.

새로운 랜드마크 하펜시티 그리고 엘피

엘브필하모니 플라자.
엘브필하모니 플라자.
낙후된 항만 지역을 가장 ‘힙’한 문화상업지구로 재탄생시킨 하펜시티(Hafencity)는 그야말로 도시 안의 또 다른 새로운 도시다.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개발 프로젝트였던 하펜시티 프로젝트는 2001년 시작돼 아직도 진행 중이며, 램 쿨하스, 데이비드 치퍼필드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참여했다. 오래된 항구의 창고들을 리모델링해 호텔, 상점, 오피스 빌딩과 주택, 문화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중이다. 그 안에만 10개에 달하는 박물관이 있다 하니 하루 이상을 할애해 돌아볼 만하다.

하펜시티 관광의 중심은 지금 제일 ‘핫’한 엘브필하모니(Elbphilharmonie) 플라자다. 건축비도 늘어나고, 개관도 5년이나 늦었다. 2017년 1월 개관한 엘브필하모니는 그동안 말도 탈도 많았지만 모든 우려를 씻어내고 도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당당히 자리잡으며 ‘엘피(Elphi)’란 애칭도 얻었다. 1960년대에 지어진 코코아 저장 창고를 그대로 두고 윗부분만 변경해 파도 물결을 형상화한 초미래형 건축물로 변신한 콘서트하우스에 들어서면 유럽에서 가장 길다는 80m 길이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파노라마 창을 통해 하펜시티와 함부르크 시가지를 내려다보니 감격스럽다.

시청 광장의 고풍스럽고 우아한 매력

베를린에서 버스를 타고 90분을 달려 함부르크에 도착하자마자 마중 나와 있던 친구가 가장 먼저 데려간 곳은 구도시의 중심인 시청 광장이었다. 그곳엔 도시의 상징인 시청사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19세기 말 지어진 네오르네상스 양식의 사암벽돌 건물이었다. 시계탑 높이가 112m, 영국 버킹엄 궁전보다 6개나 많은 647개의 방이 있다 하니 그 큰 규모에 입이 딱 벌어진다. 그 거대한 몸집을 담으려면 일반 카메라로는 아무리 뒷걸음질쳐도, 바닥에 누워도, 쉽지 않다. 건물 사진을 찍고 한 걸음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 정교한 조각과 장식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함부르크의 고풍스럽고 우아한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함부르크 시청사는 내부 투어도 가능하고 여름엔 클래식 음악 콘서트 등이 열리기도 한다.
영국 버킹엄 궁전보다 큰 함부르크 시청사.
영국 버킹엄 궁전보다 큰 함부르크 시청사.
곧 도시 전체를 보기 위해 성 미하엘 교회로 향했다. 이 교회는 17세기에 선원들의 안전한 항해와 신의 축복 기원을 위해 지어졌다. 132m 꼭대기에 시가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다른 도시의 전망대와는 달리 고속 엘리베이터가 있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모잉모잉! 함부르크의 아침인사다. 함부르크에선 ‘구텐모르간(Guten Morgen) 대신 ‘모잉모잉(Moin Moin)’이라고 인사한다. 호텔 객실에서 처음 만난 환영 카드에도 Moin Moin이라 적혀 있어 기분이 아주 좋았다. 이처럼 현지인들이 자주 쓰는 현지어를 배우고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보고, 그들의 일상을 함께하는 것은 여행자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운이다. .

사과와 양파 곁들인 소 간 별미

함부르크 스타일의 커리부어스트.
함부르크 스타일의 커리부어스트.
도시엔 11개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이 있지만 현지인이 추천하는 식당은 다르다. 가장 함부르크다운 펍이라 소개받은 프라우묄러에 들러 ‘알스터 바싸’를 주문했다. 유쾌한 식당 직원이 윙크를 찡긋 하며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시원한 음료를 갖다 준다. 프라우묄러의 메뉴판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과연 현지인 추천이라 다르긴 다르다. 계란요리 아침식사부터 점심·저녁 식사, 샐러드부터 소시지, 고기요리까지, 커리부어스트에서 파스타, 버거! 어떤 시간대에 누가 오더라도 다 입맛에 맞을 만한 다양한 요리가 가득했다.

이민의 역사가 깃든 항구 주변 포르투갈 요리들.
이민의 역사가 깃든 항구 주변 포르투갈 요리들.
저녁에 가보면 함부르크에서 가장 붐비는 펍으로 변신해 삼삼오오 맥주잔을 든 젊은이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축구 경기라도 있는 날이면 아예 대형 TV를 밖에 내놓고 파티를 즐긴단다. 이 가게의 비밀은 30년 넘은 역사, 정직한 음식, 편안한 분위기도 있지만 그중 제일은 관광객 가격이 아니라 현지 가격으로 푸짐한 양의 맛난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친근한 주인과 서버들을 꼽을 수 있겠다. 필자에게도 의외의 발견이었던 요리는 ‘사과와 양파를 곁들인 소 간’이었다. 6.9유로밖에 하지 않았지만 접시 바닥까지 싹 긁어먹은 최고의 함부르크 식사였다.

함부르크 하면 햄버거가 생각나는 사람이 많다. 햄버거가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는 낭설(?)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함부르크의 영어식 발음이 햄버그(Hamburg)이고 er을 붙여 햄버거(Hamburger)라 하면 함부르크인을 뜻하니 그런 의심을 받을 만하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 몽골계 타타르족이 먹던 간 고기가 독일에 흘러 들어와 패티 형태의 스테이크로 만들어진 것이 함부르크 스테이크(햄버거스테이크)라 한다. 잘게 저민 소고기에 양념을 섞어 맛을 낸 스테이크였는데 이것을 빵 사이에 처음 끼워 먹은 이들은 미국인들이다. 함부르크엔 이를 의식해서인지 곳곳에 햄버거 가게가 많다.

축제를 즐겨라! 함부르크 돔

뮌헨의 옥토버페스트에 버금가는 함부르크의 큰 축제가 있다. 바로 현지인들이 가장 기다리는 함부르크 돔이다. 해마다 1000만 명이 방문하는 어마어마한 페스티벌이며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에 한 달씩 총 세 번 열린다. 원래는 11세기 함부르크 대성당 안과 밖에서 열리던 크리스마스 마켓의 전통이 이어진 것인데, 함부르크 대성당이 해체된 후엔 하일리겐가이스트펠트(Heiligengeistfeld)로 장소를 옮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함부르크 돔이라 불린다. 수백 개의 상점과 롤러코스터, 관람차, 회전목마 등 다양한 놀이기구가 설치돼 밤 늦도록 돌아간다. 공연, 불꽃놀이도 이어진다.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커리부어스트, 핫도그, 사탕 등의 먹거리에 배고플 틈이 없다. 함부르크 시민이라면 누구나 돔의 추억이 있다. 데이트하는 연인, 왁자지껄 낙엽만 봐도 즐거운 십대들, 삼삼오오 아기 손 잡고 나들이 나온 가족들, 추억을 떠올리며 사람 구경하는 노인들까지. 돔 기간에 도시를 방문했다면 도시의 속살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여행메모

◆항공= 직항편은 없다. 프랑크푸르트, 뮌헨에서 환승하는 다양한 스케줄의 항공편이 있다. 초고속 기차인 ICE를 타고 독일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다. 베를린~함부르크 90분 소요.

◆엘베강 62번 유람선= 함부르크 카드인 HVV 티켓을 사면 무료로 탑승할 수 있다. 1월, 2월엔 엘베강에 얼음이 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이색적이다. 란둥스브뤼켄에서 핀켄베어더까지 가는 데 편도 30분, 왕복 1시간이 걸리며 3~9월은 일요일은 밤 10시, 월·토는 밤 11시45분까지 15분 간격으로 운항한다. 겨울엔(10~2월) 운항 시간이 짧아진다.

◆함부르크 카드(HVV CARD)= HVV에 가입한 시내 교통(U반, S반, 버스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함부르크 미술관을 비롯해 11군데의 시립 미술관&박물관의 입장료, 시내 관광, 항구 투어 등에 대한 할인 혜택이 있다. 각 정거장에 있는 매표소, 버스 드라이버, HVV 모바일 앱, HVV 온라인 웹사이트에서 구매할 수 있다. 데이티켓 7.70유로~.

◆추천 볼거리= 쿤스트할레는 ‘예술의 전당’이라는 뜻의 함부르크 박물관이다. 1850년 설립돼 14세기부터 근현대까지의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뭉크, 루벤스, 모네, 마네, 드가, 르누아르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중앙역에서 도보로 접근할 수 있다. 입장료 평일 12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