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미술품 1차 유통시장인 화랑업계 경기가 침체된 가운데서도 2차 유통시장인 경매시장에는 10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유입됐다. 특히 서울옥션의 상반기 매출(357억원)과 영업이익(64억원)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57.6%, 158.2% 증가해 시장이 점차 호전될 것이란 기대를 한층 높였다.

서울옥션과 K옥션이 가을 시장의 방향타 역할을 하는 메이저 경매를 오는 12일, 19일 잇달아 열고 국내외 인기 작가의 작품과 도자기 고서화 등 349점을 올린다. 두 회사가 내놓은 작품의 추정가 총액은 약 250억원. 국내외 컬렉터를 흥분시킬 만한 김환기 작품은 물론 추상화, 민중미술, 고악기까지 작품 영역을 넓혀 판촉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김환기의 빨간 점화가 지난 5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85억원에 낙찰된 만큼 기업이나 거액 자산가 등 ‘큰손’ 컬렉터들이 매수세에 적극 합류할지 주목된다.

◆김환기의 20억~30억원대 그림 ‘산’

서울옥션은 김환기의 그림을 비롯해 장욱진 천경자 임옥상 황재형 등 거장들의 수작 146점(100억원)을 12일 한꺼번에 경매에 부친다. 눈길을 끄는 작품은 김환기가 1958년 그린 반추상화 ‘산’. 추정가 20억~30억원에 나온 이 그림은 가로 73㎝, 세로 100㎝ 크기로 짙은 푸른색과 강렬한 선으로 산을 표현했다.

서울옥션이 가을경매에 출품한 김환기의 ‘산’.
서울옥션이 가을경매에 출품한 김환기의 ‘산’.
‘동심의 화가’ 장욱진의 작품도 여덟 점이나 경매에 올린다. 사람 두 명과 태양을 단순하게 표현한 1959년작 ‘두 인물’(3억~5억원), 하늘을 배경으로 초가집과 기와집을 그린 ‘무제’(1억3000만~1억7000만원) 등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내놨다. 천경자가 1986년 태국 방콕을 여행한 뒤 이듬해 완성한 ‘태국의 무희들’(5억8000만~8억원)도 주인을 찾는다. 고미술품으로는 조선 초기인 1426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삼존여래좌상(53개 불상)이 약 5억원부터 경매를 시작한다. 일제강점기 이왕직미술품제작소가 만든 공예품도 선보인다. 서울옥션은 이번 경매에서 임옥상 신학철 이종구 황재형 민중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아트 포 라이프(art for life)’ 섹션도 마련했다. 출품작은 12일까지 평창동 서울옥션 사옥에서 볼 수 있다.

◆백남준 유영국 천경자 최고가 도전

K옥션은 오는 19일 여는 가을 경매에 작가의 최고가 기록 경신에 도전하는 백남준 유영국 천경자의 작품을 전략 상품으로 내걸었다. 백남준의 ‘나의 파우스트’ 연작 13점 중 하나인 ‘나의 파우스트-교통’을 추정가 8억2000만~12억원에 경매한다.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에 공개된 작품으로, 탑 모양 구조물에 TV 모니터 25개를 쌓아 올렸다. 백남준의 기존 경매 최고가는 작년 5월 홍콩 경매에서 약 6억6000만원에 낙찰된 ‘수사슴(Stag)’이다.

K옥션이 출품한 백남준의 ‘나의 파우스트’.
K옥션이 출품한 백남준의 ‘나의 파우스트’.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린 천경자의 1978년 작 ‘초원Ⅱ’는 20억원부터 경매를 시작한다. 2009년 9월 K옥션 경매에서 12억원에 낙찰된 이 그림이 새로운 주인을 찾으면 천경자 작품 최고가인 17억원(‘정원’)을 단번에 넘어선다. 색채 추상화의 거장 유영국이 굵고 검은 선과 면 분할로 장엄한 산맥을 표현한 회화 ‘작품’은 추정가를 6억~9억원으로 책정했다. 손이천 K옥션 팀장은 “유영국 작품 중 가장 비싼 그림 낙찰가가 5억원”이라며 “이번 거래가 성사되면 10년 만에 기록이 바뀐다”고 설명했다.

김환기의 1958년 작 ‘창공을 나는 새’(15억~20억원) 등 9점을 비롯해 고종 어필첩, 영조 어필첩, 1948년 1월30일 간행된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글씨, 고가의 바이올린과 첼로, 명품 시계도 경매에 올린다. 프리뷰는 19일까지 K옥션 경매장에서 열린다.

김경갑 기자 kkk10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