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 서울 양재동 본사 사옥. (사진=한경DB)
현대자동차그룹 서울 양재동 본사 사옥. (사진=한경DB)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압박을 재개했다. 엘리엇이 3개월 만에 공세에 나서면서 현대차그룹이 주주들의 반대에 당초 계획을 포기했던 그룹 개편안의 새 방향에 관심이 쏠린다. 연내 개편 작업이 이뤄질지 시장 참여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8일 업계 및 증권가에 따르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에 대한 엘리엇의 2차 요구안은 실현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는 관측이 나온다. 엘리엇이 제시한 그룹 개편 방향은 여전히 복잡한 변경 방식(분할+합병)을 갖고 있는 데다 자본시장법 위반, 일감몰아주기 지속, 총수일가의 자금 동원 가능성, 향후 투자 등을 감안하면 가능성이 낮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엘리엇은 지난달 14일 현대차그룹에 비공개 서신을 보내 현대모비스를 애프터서비스(AS) 부문과 모듈·부품 부문으로 쪼개 각각 현대차,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라고 제안했다. 현대차와 모비스를 합병한 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라는 기존 요구에 변화를 준 것이다.

이에 따르면 합병된 글로비스는 기아차 및 총수일가로부터 합병현대차 지분을 매입하고, 총수일가는 합병된 글로비스 지분을 추가 인수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 변화를 줘 '총수일가→합병글로비스→합병현대차→기아차' 형태로 지배구조를 갖게 된다.

시장에선 엘리엇의 요구대로 지배구조를 바꾼다면 주주 설득과정이 어려울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합병비율에 따라 각 사 주가가 상반된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모든 주주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어려움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합병글로비스의 지분을 인수해야 하는 총수일가와 일반주주의 이해관계가 상충될 가능성도 있다.

합병 후 글로비스는 여전히 일감몰아주기 문제를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총수일가가 합병 글로비스를 통해 그룹을 지배하면 합병 전 글로비스와 모비스가 모두 계열사 매출비중이 큰 업체여서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향후 현대차그룹이 발표할 지배구조 개편안에 기아차의 현대모비스 지분 매각, 총수일가의 현대글로비스 지분 유지 등의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일단 현대차는 엘리엇의 요구를 현행법 위반을 이유로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의 중요 사안을 특정 주주에게만 알려주는 것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자본시장법에 저촉되는 기업개편 검토 위원회 구성을 엘리엇이 요구해서다.

권순우 SK증권 연구원은 "순환출자 해소와 지배구조 개편, 이해관계자와 강화된 주주권익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한 현대차그룹의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순환출자 해소와 현대차 금융계열사나 증손회사 지분 문제 등을 해소하면서 법적·행정적 절차를 만족하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에선 겉으로 '주주자본주의'를 내세워 주주 이익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단기 시세차익이 목적인 헤지펀드의 특성을 감안, 수익 극대화에 나섰다는 시각이 많다. 때문에 투기 자본으로부터 기업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보호 장치의 하나로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엘리엇은 1차 공세 이후 현대차그룹의 지분을 추가로 사들여 현대차 3.0%, 기아차 2.1%, 현대모비스 2.6%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엘리엇의 제안에 대해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합당한 여건과 최적 안이 마련되는 대로 절차에 따라 모든 주주와 단계적으로 투명하게 소통해 나갈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김정훈 한경닷컴 기자 lenn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