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상의 '잊힐 권리'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국경과 관계없이 이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유럽연합(EU)에 맞서 세계 최대 '인터넷 공룡' 구글이 EU 역외국가 주권 침해를 내세우며 법정싸움에 나섰기 때문이다.

구글이 11일(현지시간) 잊힐 권리를 전 세계로 확대 적용하라는 프랑스 당국의 명령에 불복하는 소송을 EU 최고 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CJ)에 낼 계획이라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0일 보도했다.

프랑스 정보보호기관인 정보자유국가위원회(CNIL)는 2015년 개인의 인터넷 검색 기록을 삭제할 수 있는 잊힐 권리를 유럽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검색 사이트에서도 보장할 것을 구글에 명령했다.

CNIL은 구글이 이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며 2016년 10만 유로(1억3천만 원)의 벌금을 물렸으며 구글은 같은 해 프랑스 최고법원에 불복 소송을 냈다.

EU는 2014년 잊힐 권리를 도입했다.

구글은 이후 유럽에서 삭제 요구를 받은 검색 결과 가운데 절반에 못 미치는 약 100만 건을 삭제됐다.
'잊힐 권리' 논란 재점화… 구글 "EU 이외에 적용 못해" 법정싸움
문제는 인터넷에 국경이 없다는 것이다.

실질적인 잊힐 권리 보호가 가능해지려면 인터넷 접속과 검색이 되는 세계 모든 나라의 웹사이트에서 개인 정보를 삭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프랑스 당국의 입장이다.

하지만 이 권리를 EU 이외 국가들로 확대 적용하는 것은 사법관할권 침해는 물론 표현의 자유 통제 위험이 있다고 구글은 반박한다.

또 독재자들이 온라인 검열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프니 켈러 전 구글 법무자문위원은 잊힐 권리 확대와 관련, "다른 나라 정부가 자신들의 법률을 사실상 세계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인터넷 플랫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구글은 프랑스 당국의 명령을 따르자니 표현의 자유 보호에 관한 미국의 법규와 어긋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엄격해진 EU 사생활보호법 위반으로 전 세계 매출의 최대 4%에 달하는 막대한 벌금을 물 수 있다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잊힐 권리를 둘러싼 국가 간 사법권 충돌은 이미 발생하고 있다.

캐나다 최고법원은 지난해 자국에서 교역 기밀을 훔친 혐의를 받는 한 기업과 연관된 웹사이트들과 연결되는 검색 결과를 전 세계에서 차단하라고 구글에 명령했다.

그러나 미국의 한 연방판사는 캐나다 법원의 명령을 미국에서 실행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2015년에는 브라질 사법당국이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인터넷전화 '스카이프'의 브라질 고객 자료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MS 임원을 구금하기도 했다.

당시 MS는 미국법상 미국에 보관 중인 자료를 외국 사법기관에 건넬 수 없다고 항변했다.

제니퍼 대스칼 아메리칸대 법학교수는 "국경이 의미 없는 데이터의 관리·이동 방식과 영토에 기반을 둔 정부의 법규 집행 노력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러야 수개월 뒤에나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구글의 이번 소송에 일부 언론자유단체가 지원에 나선다고 WSJ는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