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 연구기관들이 줄지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나서고 있다. 올초까지만 해도 예산 등의 문제로 정규직 전환에 난색을 보였던 것과 사뭇 다른 양상이다. 정부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는 연구기관 명단을 공개하기로 하는 등 압박에 나서자 백기를 드는 모양새다. 주로 특정 외부 연구과제 수행을 위해 임시 고용했던 비정규직을 대거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인건비 부담이 커지고 인력 운용의 효율은 떨어지고 있다는 게 연구기관들의 불만이다.

◆올 들어 정규직 전환 ‘러시’

명단공개 압박에… 국책硏 줄줄이 "정규직 전환"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달 초 인사위원회를 열어 비정규직 209명의 정규직 전환 심사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KDI는 심사를 거쳐 이 가운데 약 14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지난해엔 KDI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정규직이 한 명도 없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비정규직 124명 중 98명을 하반기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은 비정규직 38명 가운데 32명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비정규직 52명 중 27명을 정규직으로 돌리기로 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올해 비정규직 72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46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하고, 이 중 이미 상반기에 24명을 전환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비정규직 103명 가운데 66명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은 28명 중 17명을 정규직으로 바꿨다.

◆단기과제 맡던 인력 다 떠안아

문재인 정부는 작년 7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국무조정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26개 국책 연구기관 중 지난해 비정규직을 일부라도 정규직으로 전환한 기관은 8개에 불과했다. 나머지 기관들은 인건비 부담 문제로 섣불리 정규직 전환에 나서지 못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올해 6월 각 연구기관에 “6월 말까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계획을 제출하지 않으면 명단을 외부에 공개하겠다”고 압박했다. 이에 연구기관들은 줄지어 전환계획을 수립하거나 전환에 나섰다.

국책 연구기관은 주로 단기계약직 연구원이나 위촉연구원을 비정규직으로 두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은 매년 정부 출연금을 받아 고정 과제를 수행하는 고유 업무 외에 정부나 외부 단체 등에서 별도의 과제를 따내 인건비를 충당한다. 이 수탁 과제가 대부분 1~3년짜리 프로젝트 형태이다 보니 연구기관들은 단기계약직이나 위촉연구원을 채용해 연구를 수행해왔다.

해당 비정규직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단기 프로젝트가 끝나도 계속 연구기관에 남아 근무하게 된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불필요한 인력을 계속 떠안고 가면 추가적인 인건비 지출을 감내해야 한다”며 “기관 운영의 효율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부 연구기관은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상당수 비정규직 연구원의 계약 해지를 동시에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기관은 이를 놓고 연구노조와 갈등을 벌이기도 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관계자는 “국책 연구기관 대부분이 중장기적으로 이어지는 프로젝트와 관련한 비정규직 인력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추가적인 인건비 부담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